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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많은데 글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냥 겪은 순서대로 적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금요일.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참사에 대한 탄식으로 뉴스는 도배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더 더해졌다. 봉화의 아연광산 매몰사고 현장. 구조대는 동굴에 구멍을 뚫고 음식과 담요와 야광등을 내려보냈다. 내시경과 마이크로 당신들을 잊지 않고 구조하러 간다는 지상의 신호를 방송한 뒤, 혹 응답이 있을까, 청진기처럼 귀에 갖다대기를 반복하였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였다.
언젠가 태백의 석탄박물관에서 인상적인 전시자료를 본 적이 있다. 탄광촌에서는 남편이 출근하면 얼른 섬돌의 신발을 집으로 향하게 돌려놓는다. 오늘도 무사히 집으로 귀가하시라는 바람을 그렇게 돛단배 같은 신발에 담아놓는 것이다. 봉화의 가족들도 발을 동동 구르며, 편지를 쓰며 애끓는 염원을 발신하고 있었다.
KBS <뉴스 9>는 분노를 차곡차곡 쌓이게 하는 뉴스를 뱉어내고, 고립된 지 벌써 열흘째인 봉화에서도 생존 소식이 없다고 했다. 스포츠 뉴스도 심드렁해졌다. 토요일로 넘어가기 몇 분 전. 이제 오늘의 일상을 접을 시간이 왔다. 수직으로 돌아다닌 몸을 수평으로 뉘면 발바닥 아래로 존재의 동굴이 삐거덕 열리는가.
미리 경험하는 이 오리무중의 세계에서 몸을 뒤척이다가 휴대전화를 뒤적이다가, 아, 속보가, 속보가 떴고, 나는 그 속보를 읽었다. “봉화 아연광산 매몰사고 노동자 2명 두 발로 걸어서…기적의 생환.”
말이나 글은 이럴 때 이렇게 사용하라고 배운 게 아니겠는가. 벌떡 일어났다. 어제의 그 목소리를 뉴스에서 검색해서 찾았다. 집으로 가는 길이 끊긴 곳에 서 있는 두 분께 배달된 음성. 다시 들어도 너무나 간곡한 그 말을 마음의 굽이에 맞춰 행갈이를 해 본다.
시에 관한한 문외한이기에 무성한 잡담에 한마디 보탤 형편은 아니지만 이게 시가 아니면 대체 뭐가 시란 말인가. “우리는 두 분을 구하러 온 구조대입니다// 제 목소리가 들리거나 불빛이 보이면/ 천천히 불빛이 보이는 데로 오셔서/ 말을 할 수 있으면 소리를 지르시고/ 힘드시면 돌로 바닥을 좀 쳐주세요, 소리가 들리게// 천천히 이동해 주세요/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연재 |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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