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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연합뉴스

한 사람을 두고 세 번째 글을 쓸 줄은 몰랐다. 그것도 4년 주기로. 2012년 2월 ‘권력을 좇는 자유인, 김종인’을 썼다. 대선주자 박근혜를 택해 새누리당 정강에 경제민주화 그림을 입힐 때였다. 2016년 1월 ‘김종인의 리턴매치’를 썼다. 국민의당이 떨어져나간 더불어민주당에서 당무와 선거를 이끌던 시절이다. 대선주자 문재인과 손잡은 선 굵은 월경이었다. 2020년 봄 그가 여의도를 향해 다시 움직였다. 미래통합당의 총선 선대위 ‘원톱’ 자리를 달라고 했다. 또 몰고올 바람과 구름이 있나 싶었다. 보수는 자중지란에 빠졌다. 황교안이 주도한 18일간의 영입드라마는 불발됐다. 그도 “도와줄 여건이 되지 않는다”며 돌아섰다. 다시 한번 권력자 옆에서 펼쳐보려던 80세 노정객의 꿈과 길은 그렇게 끊겼다.

또 그랬다. 세 번째도 그는 총선 앞의 난세를 정치복귀 무대로 택했고, 시작부터 풍파가 일었다. 에두르지 않고 바로 찔러가는 직설은 그대로였다. 좌장, 전권, 1인자와의 독대·담판을 요구하는 김종인표 정치도 변함없었다. 그는 막강한 상임선대위원장을 원했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지역구(강남갑) 공천을 반대했고, 몇몇 공천자의 교체 권한을 요구했다. “그래야 당을 움직일 수 있다”고, “안 하면 그만”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두 번은 통했다. 8년 전 MB의 새누리당 탈당에 불을 지피고 진보 헌법재판관을 홀로 찬성한 그는 따져 물으려는 의원총회 소환에 불응했다. ‘친문’ 이해찬을 낙천시킨 4년 전엔 비례대표 2번을 셀프공천하고 노욕(老慾) 소리가 나오자 칩거했다. 누구라도 초장에 기를 꺾고 시작하려는 생각이었을 테다. 세 번째 판은 달랐다. 갈라진 당 지도부는 ‘공동선대위원장’으로 그의 몸값을 낮췄고, 태영호는 끝까지 사과를 요구했다. “공천에 관여하지 않겠다.” 김종인의 카리스마와 뚝심도 예전과는 달랐다. 돌이켜보면, 하고 싶다는 신호였다. 한발 물러선 김종인은 그를 부른 당 대표가 약속을 깨고, 선대위 원톱 자리가 무산된 날 판을 접었다. 속이 쓰렸을 게다. 자존심이 센 그는 사람 잘못 봤단 말은 바로 하지 않는다. 정치로부터의 칩거와 침묵은 8년 전, 4년 전에도 그렇게 시작됐다.

첫 손뼉은 마주 쳤을 게다. 황교안에겐 김종인이 여러모로 덧셈일 수 있다. 그의 야인·중도 색깔이 보수통합의 외곽선을 넓히고, 그의 회군이 총선에서 천군만마가 되길 내심 바랐을 게다. 민심을 보는 촉이 있고, 여야를 두루 알고, 정곡 찌르는 헤드라인도 잘 뽑는 정치 베테랑의 경륜이 탐나지 않았을까. 김종인은 그 맘을 보고, 또 한번 자기부정을 하며, 금의환향할 초대장을 구했다. 멀리는 대선주자들이 못 나서는 7월 전당대회에서의 당권까지 시야에 뒀을 수도 있다. 내가 읽는 황·김의 독심법은 그렇다. 그 의기투합을 받치기에 황교안의 힘과 리더십이 약했던 셈이다. 김종인의 눈에도 8년 전 박근혜, 4년 전 문재인과 그를 버린 황교안은 다르게 남았을 테다. 

아프게 곱씹을 것은 따로 있다. 김종인이 또 소환된 정치다. 2020년 총선은 정책과 비전이 사라졌다. 무상급식·경제민주화·복지 경쟁이 붙은 2012년, 청년·비정규직·규제완화가 불거진 2016년보다도 선거의 질은 퇴행했다. 작금의 비례대표 꼼수 선거판은 누가누가 못하나 지켜보기도 괴롭다. 이 난장판에 김종인이 늑장 호출된 것이다. 그는 2012년 총선 106일 전, 2016년엔 90일 전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합류했다. 올핸 30일 전 총선을 접었다. 미래통합당 공약·공천은 마무리된 뒤였다.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도 황교안의 ‘민부론’ 앞에선 길이 없다. 상속·법인세 인하, 일감몰아주기 완화,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삭제까지 민부론엔 친재벌·반노동 노선이 선연하다. 그가 가려 한 당엔 ‘줄푸세’ 신봉자가 득실하다. 그렇다고 김종인이 황교안에게 약속받았다고 내놓은 정책도 없었다. 얼굴마담과 허깨비만 찾는 정치가 8년째 김종인과 경제민주화를 불렀다 팽(烹)시키고 있는 셈이다.

김종인은 전무후무할 정치 궤적을 지녔다. 한 번도 힘들다는 비례대표로만 5선 국회의원을 했다. 박정희부터 문재인까지 YS·MB를 뺀 일곱 대통령과 정치·정책의 연을 맺었다. 하늘색(민주정의당)-남색(민주자유당)-청록색(새천년민주당)-빨간색(새누리당)-파란색(더불어민주당)이 거쳐간 당 색깔이고, 6번째 핑크색 앞에서 그의 정치시계가 멈췄다. 정치는 생물이지만, 다시 돌아간 보수에서 ‘뒷방 늙은이’ 소리까지 들은 그의 선택지는 협소해졌다. 태영호 소동은 표면적이고, 본질은 피로감이다. 그도 알 것이다. 어지러이 40년을 달려온 ‘자유인 김종인’의 마지막 우회전은 가볍고 허망했다. 2022년 대선 앞에도 김종인표 정치가 등장할까. 나는 ‘X표’를 친다.

<이기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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