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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문화부장


세계를 놀라게, 그리 침착하던 일본인들도 무섭게 동요했다. 미증유의 지진과 쓰나미로 목전에서 가족을 잃고도 서로를 다독이고 나누고 힘을 보태던 그들을 가없는 공포와 불안 속으로 몰아넣은 것은 핵의 위협이다.

66년 전에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핵폭탄의 제물이 된 일본이다. 결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는 일본인들에게, 통제할 방법이 없는 핵의 위협에 노정됐다는 것은 단순 공포를 넘어선 것일 터이다. 세계 최고의 안전수준을 강조하고, 모든 경우수에 완벽히 대비했다는 핵발전소가 눈 앞에서 폭발하고 방사능이 유출되는 것을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일본 후쿠시마 원자로 3호기(앞쪽)와 4호기(뒤쪽)의 파손된 모습 (AFP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세계에서 가장 대비가 잘되어 있다는 일본의 사고는 ‘안전한 핵발전소’라는 것의 실체를 확인시켰다. 완벽한 대비라는 것은, 자연의 재해 앞에서 완벽하게 무력했다.

핵발전소는 ‘평화로워 보이는’ 핵폭탄일 수 있다. 핵발전은 핵무기가 핵폭발을 일으키는 원리를 그대로 하면서 냉각을 통해 핵분열 과정을 천천히 하게 한 것일 뿐이다. 이는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핵폭탄과 같은 피해를 가져올 수 있음을 내재한다. 핵발전소가 있다는 것은 곧 잠재적 핵폭탄을 옆에 두고 사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에서 그 불편하지만 엄혹한 사실을 목격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핵 위협을 목도하면서, 이 진실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대응하는 인류의 정치와 행동이 나오고 있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핵발전소의 설계가 “자연의 힘 앞에서는 충분치 않다”고 인정하고, 독일에서 운영 중인 것의 40%에 달하는 핵발전소의 가동을 중단했다. 중국은 원전 신설 계획을 보류했고, 이스라엘은 원전 건설 계획 백지화를 선언했다.

‘완벽한 안전’이라는 것의 실체

하지만 이번 참상과 위협 앞에서도 ‘꿋꿋한’ 정부가 있다. 독일보다도, 이스라엘보다도, 중국보다도 후쿠시마에 훨씬 이웃한 한국 정부다. 대통령과 당국자들, 핵발전소 책임자들은 오로지 “무조건 우리는 안전하다”는 자기최면과 홍보에만 집중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해 등에 대해선 태평양으로 서풍이 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얘기로 시종했다. 1970, 80년대에 세워진 9기를 포함해 21기가 가동 중인 핵발전소의 안전에 대해서는 일본과 원자로 설계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만 했다. 지진 대비는 핵발전소를 설계할 때부터 가능한 경우수를 고려했기 때문에 절대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기 전에 일본 정부도 그랬다.

이러기에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유출되었다고 발표한 날, 대통령이 UAE 원자력 기공식에 참석해서 원전 수출을 독려할 수 있었을 것이다.

놀라운 것도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녹색성장’의 핵심은 실상 핵산업 육성이다. 원자력은 안전하고 경제성이 높다는 포장을 씌워서 국내에서의 핵발전소 건설 확대는 물론 수출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것을 국가목표로 세운 마당이다.

후쿠시마 사고를 목도하고 있는 지금, 중심은 어떻게 하면 핵발전소를 안전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다. 후쿠시마 사고는 소위 모든 비상상황에 대비한 설계와 건설, 대응 매뉴얼이 한순간에 무력화됐음을 보여줬다.

핵발전소를 어떻게 안전하게 만들고 관리하느냐에 초점이 두어지는 것은, 핵발전에 이득을 갖는 세력과 기업 등의 이해에 빠지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는 태생적으로 대재앙을 내재한 핵발전을 계속 확대할 것인가, 중단할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재앙을 본 우리 선택은

후쿠시마 이전에 최악으로 기록된 25년 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유럽 각국은 핵발전소 폐기의 장정에 착수했다. 그들에서도 경제성장에서 에너지의 중요성을 내세우고, 야만으로 돌아가자는 무모한 시도라는 반론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장정이 이뤄낸 성취는 후쿠시마 사고를 바라보는 유럽의 시선이 체르노빌 때와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에서 확인된다. 유럽에서 핵발전소가 많은 국가 중 하나인 독일이 자신있게 2018년에 핵발전소 없이 에너지 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고 발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당장에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의 안전을 점검하고 대비하는 것은 절대 필요하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결코 안전할 수 없음이 확인된, 인류와 지구에 대재앙이 될 수 있음이 확인된, 핵발전 정책을 계속할 것인가. 그 정책의 기본 자체를 두고 선택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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