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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신중년들과 ‘별헤는 밤’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서울시 50+재단에서 운영하는 서부캠퍼스 ‘인생학교’ 2기 수강생들과 함께 워크숍에 가서 윤동주 시인의 시를 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프로그램 내용은 간단하다. 50+ 참여자들과 함께 땅바닥에 누워 한 시간 남짓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 후 다른 자리에서 ‘별헤는 밤’ 프로젝트를 몇 차례 더 진행했다. 아르떼 연수에서 예술교육 기획자 및 예술강사들과 함께 진행했고, 청소년 인문예술캠프에서도 진행했다. 요가 매트를 깔고 그 위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멍 때리며 보면 된다. ‘별멍’이라고 해야 할까.

50+ 참여자들은 바닥에 누워 잠을 자도 되고, ‘하늘멍’을 하며 명상을 해도 된다. 단, 옆사람과 대화를 하면 안 되고, 휴대폰을 보아서도 절대 안 된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흐른 뒤, 참여자들과 다 같이 시를 읽는 ‘낭독의 밤’ 시간을 가졌다. 윤동주의 ‘새로운 길’, 이상국의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1’ 같은 시를 함께 읽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파블로 네루다) 같은 구절을 낭독할 때에는 가벼운 탄성이 터져 나오곤 했다.

참여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청소년들은 ‘선생님, 심심해요!’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고, 50+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뭐하는 거냐?’는 식의 볼멘 반응이 없지 않았다. 고독한 것을 좀처럼 견디지 못하며 고독을 심심한 것으로 오인하는 청소년들이 많았고, 경제적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50+ 세대는 위의 시들이 권유하는 ‘자유롭지만 고독한’ 삶의 경지가 아직은 실감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별헤는 밤’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 없다. 누구든 간에 저 막막한 밤하늘을 보며 ‘깊은 심심함’(베냐민)의 경지를 더 맛보았으면 한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처음 생각한 것은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2년 런던 패럴림픽에서 “당신 발을 보지 말고, 고개 들어 별을 보라”고 한 말에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짧은 우리 인생에서 제한된 시간의 지평선을 느끼는 경이로운 순간을 맛본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을 ‘좋은 작품’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갖는 것이 아닐까 기대한다.

우리에게는 ‘서로’가 필요하다. 정부와 광역·기초문화재단에서 예방적 사회정책 차원에서 50+ 신중년들과 함께하는 베이스캠프를 진행해도 좋을 것이다. 설악산·오대산처럼 ‘퇴로’가 차단된 곳에서 진행하는 인문·예술캠프 형식이어도 좋고,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서 진행하는 ‘섬마을 인생학교’처럼 질문이 있는 학교여도 좋다. 실컷 별을 보고, 50+ 동료들과 함께 귀농·귀산어촌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대체 어떻게 살아야 좋은 삶인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여하튼 50+ 세대를 위한 ‘전환학교’가 필요하다. 1년 정도 다른 삶을 탐색할 수 있도록 생활임금 같은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비가 올 때 필요한 것은 걱정이 아니라 우산이라는 말이 있다. 50+ 신중년에게 인생캠프 또는 전환학교는 ‘우산’의 역할을 할 것이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윤동주)

고영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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