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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인터넷 매체가 10·29 참사 희생자 이름을 공개하고 나서 며칠째 동네가 시끄럽다. 판단은 어렵지 않다. 유족의 동의 없는 희생자 이름 공개는 문제가 있다. 재난 상황에서 언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는 우리 사회의 오랜 고민거리였다. 재난 보도의 규범이 필요하다는 공론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겪으면서 떠올랐는데 ‘재난 보도 준칙’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진 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경험하고 나서였다. 이 강령에는 지금 우리가 논란하고 있는 ‘피해자 보호’라는 가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과거에는 ‘재난 보도’가 아니라 ‘보도 재난’이라고 할 일들이 많았다. 피해자의 슬픔을 생생하게 전한답시고 죽음의 현장에서 갓 탈출하여 공포에 떨고 있는 생존자에게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대는 가혹한 보도, 희생자의 시신 노출을 서슴지 않는 선정적 보도 등이 비일비재했다. 피해자의 신원이 가림 없이 알려지는 것도 ‘보도 재난’의 하나였다.

이런 관행은 재난 보도 준칙 제정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다가 헝가리 다뉴브강 참사가 있었던 2019년 즈음에 와서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밝힌다든지 희생자의 운구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는 상투성은 그때부터 잦아들었다.

재난 보도는 우리가 막연하게 국민이라 부르는 시청자나 독자의 눈높이가 아니라 ‘피해자의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재난 보도 준칙은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피해자의 개인 정보, 초상권 등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보면, 인터넷 매체가 유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 이름을 공개한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비판도 받고 있는데 그 가운데는 귀담아들을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 여당의 비판은 솔직히 가증스럽다. 그들은 희생자 명단 공개를 재난을 정치화하려는 음모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재난의 정치화는 오히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앞장서 조장한 것이 아니었나?

10·29 참사 이후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재난 피해자의 관점에서 위로와 사과, 원인 파악, 책임 규명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재난 피해자에게 우선 필요했던 일은 ‘공감’이었다. 특히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좌절, 상실, 분노를 나누어 가지며 재난으로 무너진 공동체 회복에 필요한 신뢰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떻게 했나? 대통령과 행안부 장관은 흔쾌하지 않아 보이는 늑장 사과와 책임 회피적 태도로 오히려 불신을 키웠다.

“경찰을 미리 배치했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행안부 장관의 첫마디는 재난의 정치화에 불을 붙인 성냥개비였다. 국가 재난 관리의 책임자는 오로지 법적 ‘무죄 증명’을 남기는 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재난의 정치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대통령,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국무총리와 국무조정실장, 행안부 장관과 용산구청장은 하나같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허둥지둥하였다. 책임 회피를 위한 재난의 정치화가 시작부터 노골화한 탓에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재난으로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 제대로 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지금 재난 피해자들은 십중팔구 고립감과 무력감으로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다. 재난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이 초현실적 상황이 개인의 탓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내 가족이 하필 왜 그때 그 자리에 있었느냐고 마냥 통탄하고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재난 피해자들이 이런 생각에서 헤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상황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 원인 때문에 생겼다는 자각까지 재난 피해자의 생각이 닿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큰 소리로 말해주어야 한다. 그들에게는 사회적 연대가 절실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재난 피해자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정부가 어떻게 보호, 지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재난 피해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원하는 것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피해자 보호를 위한 개인 정보 공개는 제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 있고 국가가 그들을 잘 돌보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까지 제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재난 피해자를 보호하고 재난으로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국정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국회와 정당이 나서야 할 시간이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연재 | 정동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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