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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곰, 거북이, 새 탈을 쓰고 한 대형마트 앞에 섰다. 털이 숭숭 달린 곰 인형 탈을 쓴 활동가에게는 특별히 팥빙수를 쏘고 싶은 날씨였다. 7월3일은 ‘세계 일회용 비닐봉지 안 쓰는 날’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물 탈에 비닐봉지를 붙인 채 장을 본 다음, 포장재를 까서 마트에 돌려주는 ‘플라스틱 어택’을 진행했다. 버려진 플라스틱으로 인해 고통받는 동물들을 기억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날도 장바구니를 사용했지만 실제 비닐봉지가 나오지 않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지금으로부터 약 두 달 전 28개의 대형마트에서 1120개의 식재료를 조사한 결과 73.7%(825개)가 이미 포장된 채였다. 수레에 수백장의 장바구니를 실고 간들 비닐 사용량이 줄지 않는다. 전통시장도 마찬가지다. 2018년부터 망원시장에서 장바구니를 대여하며 비닐봉지를 안 쓴 사람에게 포장되지 않은 채소 한 개를 선물하는 행사를 열어왔다. 공항 검색대처럼 손님들 장바구니 안을 조사하는데 그 안에는 이미 비닐봉지가 한가득 차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비닐봉지는 쉴 곳이 없달까.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문제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여전히 버려지는 폐기물 사용량은 급증하고 있다. 생활폐기물에서 포장 폐기물은 부피 기준 57%를 차지하며 매년 늘어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국내 포장 폐기물의 발생량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다.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큰 다른 나라보다 심각하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위생이 중요해지고 비대면 접촉이 늘어나면서 포장 폐기물은 더 많이 버려지고 있다. 일회용 마스크와 택배 포장재, 그리고 일시적으로 매장 내 사용이 허용된 일회용 컵만 봐도 쉽게 짐작된다.
이에 환경부는 ‘일회용품 함께 줄이기 로드맵’을 마련하고 그중 하나로 포장된 제품을 묶어서 재포장하는 관행을 금지할 예정이었다. 커다란 비닐에 재포장된 1+1 우유나 리필용 세제, 투명 플라스틱 통에 담긴 렌즈 세척액 3개 세트 등을 말이다. 그러나 묶음포장을 금지하면 할인이 사라져 가격이 오른다는 가짜 뉴스가 퍼지면서 올 7월부터 시행될 규제가 내년으로 연기되었다. 동네 편의점만 가도 묶어놓지 않은 제품을 1+1로 쉽게 살 수 있다. 바코드만 찍으면 할인이 뜬다. 금지된 것은 쓸데없는 묶음포장과 포장 쓰레기지, 할인이 아니다. 더군다나 기업은 지난 1년간 20차례 환경부와 협의를 진행했고 6개월간 현장 적용 기간도 가졌다.
나는 최근 망원시장 앞에 포장 없이 알맹이만 살 수 있는 리필가게를 열었다. 포장재 값을 빼주기 때문에 동일한 다른 제품보다 가격이 약간 더 싸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포장재 비용을 소비자에게 할인해주면 다들 좋아한다.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아일랜드 역시 151개 매장과 모든 온라인 상품에 재포장 묶음판매를 금지했다.
2018년 첫 플라스틱 어택 때 나쁜 플라스틱 PVC의 금지를 요구했고 1년 후 식품용 PVC 사용이 금지되었다. 2020년 플라스틱 어택의 문구는 이렇다. “지구는 1+1이 아니다”, “묶음포장 없는 할인, 야 나두 해(편의점)”. 이제 기업이 응답하라.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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