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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인플레이션 지긋지긋해서 문 정권을 지지했었는데, 싹 이번에 다 물러나야 돼. 여당이나 가릴 것 없이 싹 물러나야 돼. 바닥이 다 드러났어. 용서할 수가 없어요.”

강렬했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즈음해 마련된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 방송된 한 시민의 울분에 찬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동산 가격 폭등을 바라보는 서민들의 분노가 이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이제 좌절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감정원 발표를 보면, 지난달 서울 집값은 전달보다 0.5% 올라 지난해 9·13 부동산대책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 등 정부 규제책에도 끄덕하지 않고 있다. 전셋값도 동반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전셋값 상승률은 0.14%로 최근 4년 만에 가장 높았다. 집값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꿈틀대기 시작했다. 당시엔 정치적 불안감이 해소되면서 생기는 일시적 현상이란 분석도 많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9·13 대책 등 규제책이 나올 때마다 잠시 주춤했을 뿐 상승세는 계속됐다. 그렇게 내내 가격이 오르면서 서울 강남의 아파트는 로또복권 1등이 돼도 사지 못할 수준이 됐다. 당첨 확률이 814만분의 1인 로또복권 1등보다 뽑힐 가능성이 더 높고 받는 돈도 더 많으니 서울 강남권 청약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하다.

문 대통령은 그날 국민을 향해 “더 강력한 방법으로 부동산은 반드시 잡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었을까. 정부는 대대적인 실거래가 단속을 펼치며 탈세 의심사례를 적발해냈다. 지난 8~9월 서울에서 신고된 공동주택 거래 2만8140건 중 부동산거래신고법 위반이 의심되는 2228건을 가려낸 것이다. 그런데 거래 대상의 10% 정도인 위반 의심사례 모두가 투기적 거래라고 해도 또 그걸 강력히 처벌한다고 해도 집값을 잡을 수 없다. 나머지 90%는 계속 집을 사러 다닐 것이다. 집을 사려는 이유는 향후 집값이 오를 것이란 시장 참여자들의 확신 때문이다. 단속과 처벌만으로 집값을 잡을 수 없다. 결국 시장의 기대심리를 제어하지 못하는 정책은 또 다른 변죽만 울릴 게 뻔하다.

정부의 단속 결과는 부동산에 대한 서글픈 단면도 확인시켰다. 부동산이 투기 수단을 넘어 부를 대물림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 실제로 한 미성년자는 부모와 친족에게서 6억원을 증여받고 서울 서초구의 11억원짜리 아파트를 전세 끼고 매입했다. 강남4구와 마포·용산 지역에 이런 의심사례가 집중됐다고 한다. 집 하나가 재산 증식, 노후 대비, 상속까지 해결해주니 집에 대한 열망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종합적이지도 포괄적이지도 그렇다고 세밀하지도 않다. 여론이 아우성치면 그동안 만지작거리던 대책주머니에서 구슬 하나 꺼내는 모양새다. 시장을 만족시키지도, 놀라게 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한다. 정책에 대한 내성만 키워 ‘백약이 무효’일 정도다.

부동산값 상승은 무주택 서민들의 실질적인 주거 수준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높은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은 집이 아닌 방에서 산다. 청년들은 이미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경향신문이 지난달 보도한 ‘오! 평범한 나의 셋방’ 기획기사와 동영상을 보면 5평 이하 면적에 부엌, 침실, 화장실을 꾸역꾸역 넣는다. “너무 숨 막히고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에서 이들은 지낸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발 뻗고 자고, 화장실도 여유롭게 쓰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한 층 16개 방에 화장실과 세면대를 공용으로 사용하는 1평 고시원 거주자는 방이 아니라 관(棺)에서 자는 것 같다고 했다.

부동산뿐 아니다. 계층이동 사다리로 역할을 해온 교육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방향성마저 잃어버렸다. 줄곧 ‘정시 축소·수능 확대’를 내세웠던 정부는 서울시내 주요 대학의 정시 비율을 4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공론화를 거쳐 지난해 8월 ‘정시 30%’를 내놓았던 정부의 방침을 불과 1년 만에 스스로 허무는 일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대입과 관련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불공정하다는 여론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지난 10년간 이어져온 수시 확대 기조를 단번에 바꾸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여전히 공교육의 후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사교육 시장은 ‘손님맞이’에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공정이 점수에 따른 줄세우기에 그치는 것인가.

성공한 정부가 되려면 선거 공약을 정책으로 구현해 이를 실현시키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들은 목표가 불명확하고 실행은 정교하지 못하다. 지금도 안되는 것이 다음이라고 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언제까지 국회 탓, 야당 탓으로 정책의 빈곤함을 가릴 것인가.

“여당이나 가릴 것 없이 싹 물러나야 돼. 바닥이 다 드러났어. 용서할 수가 없어요.” 넉 달 뒤면 총선이다.

<박재현 사회에디터 겸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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