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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국가의 행위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중·고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웠던 사회계약설의 개념이다. 사회계약설은 계몽사상의 핵심 논리로 근대 민주주의 사회를 형성하는 기반이 됐다. 구태여 사회계약설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적어도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줄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에서 그런 믿음을 저버리는 국가의 행위가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국가’의 이름을 내세운 정치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탄압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나치 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이 그러했으며, 3대 세습체제인 북한도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행위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고 있다. 1970년대 유신체제하에서 우리도 그런 경험을 했다. 그런데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던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또다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잃게 된다.

9월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 사망 국가폭력 규탄 시국선언’에서 백씨의 둘째딸 민주화씨가 발언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세월호 사건에서, 백남기씨 사망에서 우리는 이런 현실을 본다. 많은 시민이 TV 화면으로 지켜보는 앞에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월호 배 안에 갇혀서 목숨을 잃었다. 사고신고 접수 후부터 배가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2시간 이상의 시간이 있었으며 침몰 후에도 당일에는 상당수 생존자가 배 안에 갇혀있을 가능성이 있었는데도, 국가는 거의 손을 쓰지 못했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는 의식을 찾지 못한 채 317일 동안 병원에서 투병하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상당수 시민들에게 공권력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의법 조치도 할 수 있다는 위협이 그러하다. 국회 대정부 질문 답변에서 황교안 총리는 “의혹은 누구나 얘기할 수 있으나 의혹제기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고 했다.

이제 국민은 정부와 관련된 문제라면 이해가 가지 않거나 의심할 만한 일이 생겨도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으면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가에 의해 법적 조치를 당할 수도 있다. 정부 정책과 의견을 달리하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1970년대 포장마차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정부를 비판하다가 공안당국에 끌려갔다는 사건을 연상시킨다.

사실 사회계약설과는 달리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반드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국가가 잘못된 정책을 시행하거나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지만, 어쩌다 그런 잘못을 했다고 해서 국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기본 사상으로 일컬어지는 사회계약설은 현실에는 적용되지 않는 그저 ‘이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가 그런 잘못을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밝혀야 한다. 그렇지만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승객을 구조하지 못했는지는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사건의 책임 소재도 불투명하다. 그저 승객을 내버려둔 채 탈출한 선원들과 선박회사, 현장 구조를 효과적으로 하지 못한 해경의 책임만 물었을 뿐이다. 백남기씨가 시위 도중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목격했으며 영상으로도 남아 있다. 병원의 진료기록에서도 ‘외상성 뇌출혈’을 선행 사인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원인 규명은 사건을 불러일으킨 시위 진압 방식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 문제에는 신경을 쓰지 않은 채 고인의 부검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위진압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은 논의도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세월호나 백남기씨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시민들을 국가는 다시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억누르는 악순환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국가는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로 다가온다. ‘국가’의 이름을 내건 정부는 자신과 이념이나 노선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보호하지만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적대시한다. 국민들에게 국가에 보호를 요구할 수 있는 ‘시민’이 아니라 국가의 눈치를 보는 ‘신민’이 되기를 요구한다. 정부가 그토록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를 이룬 근간인 시민적 권리는 그저 교과서 안에 나오는 책상 지식으로 전락한다. 국가가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함께 사라진다.

김한종 |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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