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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21일 경향신문이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1200명의 명단을 1면에 게재했다. 1면을 꽉 채운 명단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구구절절한 어떤 말보다도 강력했다.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1200명의 명단이 가리키는 이정표는 무엇일까? 신문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실업이 문제고 최저임금이 중요한데 왜 산재일까?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51)가 26일 서울 중구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재단 출범식에 참여해 자전거 탄 아들 김씨의 그림과 손을 맞대고 있다. 조문희 기자

사실 산재는 노동운동이나 노동연구에서도 주변부에 속한다. 고용이나 임금 문제에 비해 당사자 수가 적은 데다 전문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논문도 사회학자보다 의료인이 쓴 게 많다. 산재추방운동은 현재 노동안전보건운동으로 불리는데 당사자운동에서 대책위 구성 같은 지원활동을 거쳐 노조활동의 일부가 됐다가 최근에는 건강권운동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1987년 김성애의 투신자살을 계기로 전개된 인천지역 산재노동자들의 경인국도 가두시위가 당사자운동에 해당한다면 1988년 문송면 수은중독 사망사건과 원진레이온 산재피해의 진상조사에는 외부 전문가가 대거 결합했다. 또 전노협과 민주노총의 출범 이후 노동운동 차원에서 전개됐다가 최근에는 산재 당사자와 활동가가 결합한 ‘반올림’ 같은 단체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운동 주체에서도 알 수 있듯 산재 문제는 노동운동의 차원을 넘어선다. 노동을 넘어선, 건강과 생명에 관한 문제이자 노동권을 넘어선, 인권의 문제다. 1200명의 명단이 독자들에게 준 깊은 울림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고용과 임금에도 노동자 생존이 걸렸지만 계급 문제, 진영 간의 다툼으로 비치면서 외면받는 게 현실이다. 비정규직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면서도 구의역 김군과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의 무참한 죽음엔 쉽게 공감하는 게 사람들의 심리다. 당위적 운동이 아닌 존재론적 인간, 진영을 넘어선 보편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독자들과 공명하겠다는 게 경향의 속셈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산재 문제 또한 계급의 영역이다. 어느 학자는 반올림운동을 일컬어 ‘노동자 육체의 총체적 저항’이라고 했다. 돌려 말하면 산재는 노동자 육체의 숨겨진 미래다. 운이 좋아 피할 수 있을지언정 노동자로 사는 한 노심초사 대비해야 할 숙명과도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산재는 노동자 자녀의 숙명이기도 하다. 계급사다리가 걷어치워진 지금 가난하지만 성실한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게 됐다. 가난은 나태와 무능력의 상징이 됐으며 ‘엄친아’라는 단어의 유행은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성격도 좋을 것이라는 암시가 됐다. 매스컴에서는 연예인 엄친아의 조건으로 부모의 배경과 재력을 들고 있으며 부모의 그것은 자식의 상품성을 보증하는 잣대가 됐다. 일하며 공부하는 고학생은 성실의 표본이 아니라 노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상징이 됐고, 가난은 곧 죄의 다른 말이 됐다.

최근 한 아이돌그룹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제작자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어느 기사에서는 그를 “유전자부터 남달랐다”고 표현했다. 부친은 전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고 친척 형은 유명 게임업체 의장, 외삼촌은 전 국회의원이다. 이들이 좋은 유전자의 출처라면 1200명은 좋지 않은 유전자의 소산이거나 출처인 셈이다. 좋은 유전자와 좋지 않은 유전자가 아예 분리돼 섞이지 않고 살아가면 그나마 좋으련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좋은 유전자의 배경에는 좋지 않은 유전자의 희생이 있다는 게 문제다.

1999년 6월22일 대우중공업 노동자 이상관이 산재사고로 입원 중 강제퇴원조치를 당한 뒤 음독자살했다. 강제퇴원조치는 ‘IMF 극복을 위한 고통분담 대책’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노동자에게 지급해야 할 보험금 532억원을 줄이면서 비롯된 일이었다. 당시 공대위는 공단 이사장의 화형식을 거행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임명된 이사장은 1993년 노동부 국장으로 있을 때 불법취업 외국인이 임금체불이나 산재보상과 관련한 소송을 제기할 경우 강제출국 조치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서울고법이 불법취업 외국인에게도 산재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판결한 뒤 하루 만의 일이다. 톨게이트 노동자와 관련해 기시감이 드는 일이다.

연좌제를 끄집어내려는 게 아니다. 거꾸로 연좌제가 없어졌으니만치 유전자, 엄친아 운운하며 계급대물림을 비호하는 일도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이 승부수를 던진 것 같다. 조국사태를 겪으면서 다른 언론사와의 차별성을 진영논리를 넘어선 보편적 정의를 지향하는 것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 쉽지 않은 길이다. 최초의 진영논리는 계급전선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투를 빈다. 지금의 진영논리는 많이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정의의 지향이 오히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위한 계급전선에도 보탬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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