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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도 그 짓은 안 합니다.” 지난 퀴어축제 때 옆에서 반대집회를 하던 이들이 내건 구호다. 아니다, 한다. 미국과 노르웨이의 연구팀은 2008년 조사 결과 1500종이 넘는 동물에서 동성애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나는 짐승도 하니 인간도 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짐승이 하지 않는 일은 인간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무지한 논법에도 찬성하지 않는다. 다만 과학적 사실을 말할 뿐이다.

성소수자의 지위나 권리에 대한 논의에서 우선 전제해야 할 것은 과학적 사실이나 객관적 진실의 문제를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서로 논쟁과 변론에 쓰이는 객관적 사실을 공유하는 데 이의가 없어야 한다.

동성애자의 성적 행위를 특별히 죄악시한 것은 기독교 문명이나 이슬람교 문명에서다. 그러나 같은 성 사이에서도 서로 끌리거나 성적 행위를 하는 일은 시대와 장소를 달리 해서 폭넓게 존재했다. 이 보편성은 다시 동성애가 과연 질병인가, 동성애를 처벌함이 옳은가 하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분류에서 제외한 것은 1990년으로 이미 30년 전이다. 미국정신과협회의 같은 조치는 1973년에 이루어졌다. 2020년 현재 세계 200여개국 중 동성애가 불법인 나라는 69개국뿐이며 그중 상당수가 아프리카와 이슬람권에 위치한다. 2019년 기준으로 세계 28개국이 동성혼을 법으로 인정하고 있고, ‘시민결합’으로 동성커플의 법적 결합을 인정한 나라까지 합치면 40개국이 넘는다.

포괄적 내용의 차별금지법 발의
개신교계 ‘성적 지향’ 들어 반발
동성애 거부감은 개인적 성향
차별 금지 반대는 사회적 영역
인간 존중한다면 혐오 멀리해야

차별금지법안이 지난 6월29일 국회에 발의되었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법은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를 “합리적 이유 없이” “고용, 재화나 용역의 공급, 교육시설 등에서의 교육훈련에서 특정인을 차별하는 행위” 등으로 정의하면서 그 차별행위의 근거 사유로 성별 등 19가지를 열거한다. 그런데 이 법은 차별행위에 대한 진정권이나 구제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으면서도 정작 차별행위에 대한 금지 자체나 법적 제재에 관한 규정이 없다. 그 외에도 양성평등, 고용평등, 장애인 차별금지 등에 관한 특별법이 있으나, 이번 차별금지법안은 차별행위에 대한 금지와 제재를 실효적으로 도모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며 무엇보다 내용이 포괄적이다.

위에서 말한 차별 사유 중 하나가 성적(性的) 지향이다. 차별금지법안은 성별과 성정체성도 들고 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보수 개신교계가 이 법안에 반대론을 펴고 있다. 어느 목사는 “동성혼은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면서, “동성애는 법으로 인정되면 백 년까지 안 가도 에이즈를 양산하고 생명이 잉태되지 않기 때문에 정말 심각한 죄다”라고 했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안은 동성혼이나 동성애를 인정하는 게 아니라 이를 사유로 한 차별을 금하는 것이다. 임신과 출산으로 말하자면, 이성애자이면서 비혼자거나, 혼인했으나 자녀를 안 두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병력이나 생식은 차별의 정당한 근거가 못 된다. 다른 목사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나는 설교 못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안에는 교회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이 법안은 고용관계, 교육, 재화와 용역의 공급관계, 행정서비스 영역에서의 차별행위를 규제하려는 것이다. 성소수자를 정서적으로 수용하지 못함은 개인적 성향의 문제이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금지에 반대함은 법적·사회적 영역의 문제다. 양자는 서로 다른 것이다.

나는 이성애자다. 정서적으로는 동성애에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남이 동성애를 한다고 비난하거나 반대할 생각도 없다. 동성애를 그린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감독인 리안은 이성애자다. 그는 아카데미상을 받은 후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뿐이라고.

기독교도가 아닌 이에게, 기독교의 참된 가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존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재판으로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을 단죄하고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사람을 화형에 처하고 마녀사냥을 벌인 역사, 유대인에게 별 모양 표시를 붙이고 게토에 몰아넣는 데 일조한 기독교의 과거사가 근본주의와 문자주의에 치우쳐 때로 인간 존중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던 점을 반성해야 한다면, 교회는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도 멀리해야 옳을 것이다.

성전환에 따른 호적 정정을 법원이 재판으로 인정하기는 했어도, 입법으로 성소수자 차별에 대한 실효적 보호책을 마련하는 일은 이제 시작이다. 이 법안은 통과되어야 한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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