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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언저리였다. 친구가 책 한 권을 빌려줬다. 고인이 된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였다. 이 책을 읽기 위해 나는 친구에게 술까지 사줬다. 이미 판매금지가 된 소설이었다. 깊은 밤에 읽었다. 문장을 읽는 맛은 좋았다. 책장이 쑥쑥 넘어갔다. 하지만 실망했다. 수위가 한참 낮았다. 이 정도는 이미 마스터한지 오래였다. ‘빽판’을 사러 다니던 세운상가에서 구한 일본 ‘야설’ 번역본은 물론이요, 서점에서도 구할 수 있었던 도미시마 다케오의 <여인추억>보다 못했다. 책을 반납하며 친구에게 얻어 마신 술을 뱉어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울러 자기도 실망했다는 친구의 자백을 이끌어냈던 기억도.

이 책을 구해보려 얇은 지갑을 열었던 이유는 이미 <즐거운 사라>로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걸 봤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문단과 학계를 가리지 않고 마 교수를 천하의 색마로 몰아가지 않았는가. 검찰의 구속 이유가 무려 ‘음란문서 제조 반포’였으니 호기심 많은 청년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는 판결문에 이렇게 남겼다. “이 판결이 불과 10년 후에는 비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판사로서 현재의 법 감정에 따라 판결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예언이 실현되는 데는 10년씩이나 필요없었다. 그가 사면되어 복직한 1998년의 세상만 해도 충분히 그랬으니. 어쨌거나, 이 필화사건 이후 마광수는 작품으로 세상과 불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아니, 이후 종종 “자기 검열 때문에 아무 것도 쓸 수가 없다”라 했다하니 그러지 못했다는 게 정확하리라.

작가 마광수

자기 검열이란 보이지 않는 상자에 스스로를 가두는 행위다. 신념에 의해 스스로를 검열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외부적 상황에 의해 생겨난다. 한참 ‘청소년 유해 매체 판정’으로 음악계가 들썩였던 이명박 정권 시절에 가사에 술이나 담배와 관련된 내용이 들어가면 무조건 19금 판정이 내려졌다. 여성가족부가 담당했던 심의다. 해당 노래 하나에만 적용되면 그나마 다행인데, 문제는 그 음반에 통째로 주홍글씨가 찍혔다는 거다. 건전한(?) 노래도 청소년들이 들을 수 없는 웃기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행여 술이나 담배를 연상케 하는 단어라도 들어갈까봐 가사를 몇 번씩 들여다 보는 음악가들이 생겨났다. 2000년대 중후반의 일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직후, 한 음악가를 만났다. 멀지 않은 과거에 음악계에 꽤 높은 영향력을 가졌던 그는 갑자기 잊혀지다시피 했다. 어쩌다 내놓는 음악은 지루했으며 그나마도 조용히 흘러갔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말했다. “지난 9년동안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어. 내가 이런 음악을 해도 될까? 무슨 일을 당할까봐가 아니었어. 세상이 이런데 내가 만드는 음악을 사람들이 태평한 소리 한다며 손가락질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 그의 말이 근거없게 들리지는 않았다. 이명박근혜 시대에 정신적으로 곤란함을 겪은 음악가들을 몇 알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다가 공황장애에 걸린, 사회적 메시지를 은유하던 음악가가 있었고 세월호 이후 일년간 작업했던 음반을 엎어버린 음악가도 있었다. 블랙리스트로 대변되는, 사회적 공기가 그들에게는 법과 제도보다 강력한 자기 검열의 칼날로 작용했던 셈이다.

판사조차 미심쩍어 했던 법 적용은 아득한 과거가 됐다. 여성가족부의 존재이유에 의문을 갖게 했던 무분별한 심의도 사그라들었다. 박근혜는 전 대통령이란 호칭 대신 수인번호로 불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자기검열의 위험에서 벗어난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법과 제도라는 공적 권력의 검열을, 배타적 진영논리의 그것이 대체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잊을만 하면 SNS상에서 벌어지는 조리돌림이 ‘고발’과 ‘불편 유발’이라는 이름아래 욕망과 자유의 손발을 잘라내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감시탑이 사라진 자리에, 만인의 만인을 향한 패놉티콘(Panopticon·전방위 감시 체계)이 세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와 피아의 구분이 없는 건축물이다. 처벌과 금지에 대한 두려움 대신, 매장과 손가락질에 대한 공포가 표현의 물길에 스스로 둑을 설치하게 하는 것이다. 마광수 교수를 추모하는 글에서 종종 ‘시대를 앞서갔다’는 문장을 봤다. ‘사라’의 시대는 지금일까. 그 즐거움이 소설 속의 상징으로나마 존중받을 수 있었을까. 역시, 나는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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