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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퍼지면 공포는 생명보다 생계를 먼저 공격한다. 1990년대 ‘홍콩조류독감’으로 뒤섞어 부르던 조류인플루엔자(AI)가 한국에 처음 발생한 때가 2003년 12월이었다. 닭을 먹으면 사람도 죽는다 여겨서 당시 치킨점 10%가 폐업을 하고, 70% 정도의 치킨점이 적자를 냈다. AI부터 구제역, 메르스나 사스 사태가 터졌을 때도 병에 걸려 죽기 전에 굶어 죽겠다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코로나19 사태가 외식 특수가 있는 입학식과 졸업식, 밸런타인데이 시즌과 맞물리면서 요식업 전체가 고통에 빠졌다. 요식업에 기대고 있는 농어업도 크게 타격을 입고 있다. 2월에는 학교급식 공급을 준비하면서 생산자와 유통인들 모두 기지개를 켜야 할 때인데 개학이 늦춰지면서 큰 혼란에 빠져있다.

먹고사는 일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꽃의 일도 고통스럽다. 졸업식과 밸런타인데이가 있는 2월은 일 년 중에서 꽃이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로 ‘절화’라 하여 꽃다발이나 꽃바구니가 가장 많이 팔리는 때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이 있는 5월도 예전에는 성수기였지만 카네이션은 수입 꽃 시장으로 대체되었고, 카네이션을 가슴에 단 ‘어버이’들은 이제 경로당에서나 겨우 만날 수 있다. 하여 유일한 꽃 성수기인 2월에 많은 화훼농가들이 생산시기를 맞춰왔다. 하지만 이번 졸업식 시즌을 놓치며 한 철이 아니라 일 년 농사를 망친 셈이다. 화훼를 취급하는 공영시장에서는 화훼 농가에 출하를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낼 정도다. 경매시장에 출하를 하지 못하는 농수산물은 폐기 수순을 밟는다. 가장 많이 재배되는 절화인 장미는 거래가가 반토막 나면서 차라리 짓이기는 방법을 택했다. 화훼농민들은 꽃봉오리 상태에서 꽃을 수확한다. 하지만 느닷없이 만개한 꽃밭을 보고 있자니 피눈물이 날 것이다. 공공기관에서는 꽃소비 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기관이 솔선수범하여 1테이블마다 1송이의 꽃을 놓자는 ‘1T 1F’ 캠페인을 펼치고 시민들에게 꽃을 한 송이씩 나눠주는 행사를 곳곳에서 벌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꽃은 ‘어차피 먹지도 못하는 것이 왜 이리 비싸냐’라고 여기는 사치재거나 경조사 용도일 뿐이다. 국민소득이 올라가면 꽃을 소비하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내다보기도 했지만 그런 시대는 끝내 오지 않았다. 화훼업계는 부정청탁금지법과 장례식장 조화재활용 문제, 수입 꽃을 한국 화훼산업의 붕괴 원인으로 지목하고 정부에 대책을 요구해왔다. 화훼 생산자들은 화훼 자조금을 조성하고 국회에서는 ‘화훼산업 진흥법’도 통과되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꽃 한 송이 사들고 퇴근하는 세상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한국에서 꽃은 처음부터 정치적인 작물이었다. 화훼산업은 해방 이후 ‘특용작물’이란 이름으로 수출을 목적으로 한 국가 주도의 산업이었다. 화훼단지 조성도 국가가 주도했다. 그러다 주거대책을 명분으로 꽃밭을 불도저로 밀어 아파트 단지를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지금 서초동 꽃마을이 그런 역사를 지닌 곳이다. 경제가 위축되고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려 하면 위기의 원인이 과시욕과 사치 때문이라며 경조화환 과시단속을 했고, 그때마다 화훼업계는 화훼산업이 붕괴한다며 탄원을 했다. 반대로 화훼산업이 위기에 몰리면 정부는 ‘1인 1화분 기르기 운동’ 같은 소비촉진 운동을 주도했다. 이에 맞춰 반장 엄마들은 교실에 큰 화분을 들여놓아야 했다.

누구나 꽃을 즐기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화훼업계의 포부는 참으로 아름답다. 하지만 그 ‘누구나’에 살면서 꽃을 사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을까. 청탁을 받을 정도의 높은 자리의 사람들만 꽃을 누려왔던 세상에 문제의식을 던지고 발전해 나가길 기원한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말까지 빌리지 않더라도 꽃을 보면 누구나 행복해질 테니까.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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