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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마다 나는 교실의 창문들을 활짝 열어놓고 글쓰기 수업을 했다. 가을바람 냄새는 봄바람과 어떻게 다른지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늘하고 건조하고 낭만적인 그 냄새를 맡으며 아이들과 근황을 주고받았다. 가을에는 왠지 연애를 시작한 아이들이 많았다. 20분쯤 일찍 끝내주기도 했다. 교실에서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름다운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올해 가을도 물론 아름답지만 글쓰기 수업의 풍경이 예전과 같지는 않다. 모니터 화면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맨 처음 온라인 수업에서 가장 어색했던 건 잡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이 대부분 음소거 상태로 수업에 참여해서다. 줌은 소리를 내는 사용자의 화면을 크게 비추기 때문에 혹시나 주목을 받을까봐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자신의 집에서 나는 소음이 수업을 방해할까봐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러자 말하는 사람이 나뿐인 수업이 되었다. 잡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이야기의 길이를 조절하기도 하고 방향을 바꾸기도 했는데, 음소거 상태로는 그 소중한 청각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수업부터는 음소거를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10명 이하의 소규모 수업이라 음향 문제 없이 잡소리가 공유되었다. 환절기마다 비염이 도지는 아이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 조심스레 과자를 먹는 아이의 소리, 큭큭대는 소리, 옆방의 강아지가 짖는 소리…. 그것들이 나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니까 부디 편하게 소리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하루는 한 아이가 자신의 카메라를 끄겠다고 말했다. 그날따라 화면에 얼굴을 보이는 게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소리를 끄는 아이는 있어도 카메라를 끄는 아이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피드백을 활발히 주고받는 소규모 글쓰기 수업에서 얼굴을 보는 것은 중요한 감각이다. 봄으로써 어떤 신뢰 위에서 상호 작용할 수 있게 된다. 한 아이의 화면만 검게 사라질 경우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불균등해진다. 카메라를 켜지 않은 아이는 마치 출석하지 않은 아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교사가 카메라를 켜달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너무 힘들면 오늘만 잠깐 꺼도 된다고 말했다가 나는 다시 요청했다. 힘을 내서 카메라를 켜주면 좋겠다고. 왜냐하면 모두가 조금씩 용기와 성의를 내어 화면 앞에 앉아 있으니까. 온라인 수업에서도 출석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집에서도 사람들을 만날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야 하는 것이다. 아이가 저절로 그런 채비를 하도록 좋은 수업을 하고 싶었다. 그 주에 나는 흘러간 가요의 첫 소절을 글감으로 내주었다. ‘만날 수 없잖아. 느낌이 중요해.’ 그러자 한 아이가 다음과 같은 글을 써왔다.

“캠을 켜는 순간 20개 넘는 화면에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으로 만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온라인에서는 가볍게 인사를 하기도, 쓸데없는 얘기를 하기도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아침 인사를 하지 않게 되었다. 단단한 장벽 같은 게 느껴진다. 밀어도 소용없는 그런 단단한 벽 말이다. 다시 오프라인 교육을 하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답답함을 안고 온라인에서 만난다. 시각과 청각 정보는 공유하지만 촉각과 후각 정보는 공유할 수 없다. 함께 창을 열고 가을바람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나는 모니터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내 집의 서재와 파주의 하늘과 나무들을 비춘다. 못 만나서 못 전하는 느낌 말고, 못 만나서 전할 수 있는 느낌이 무엇인지 최대한 찾아가는 중이다.

<이슬아‘일간 이슬아’ 발행인 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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