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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권
기술의 발전 때문에 인간은 편안하다. 또한 불안하다. 해결해야 할 숙제가 끝이 없다. 영상편집을 연습했더니 다음은 배경음악이 문제다. 주머니를 털어 실력 있는 뮤지션에게 작곡을 의뢰하고 싶지만 내 벌이도 그다지 좋지는 않다. 그래서 개러지밴드를 배우기로 했다. 간단한 음악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앱이다.
뮤지션 박성도님을 만나 두 시간 개인교습(?)을 받았다. 입이 떡 벌어졌다. 오선지에 콩나물 하나씩 그리던 시대가 아니다. 미리 녹음된 짧은 소리들을 레고블록처럼 조립하면 음악이 뚝딱 나온다. “창작이란 개념 자체가 바뀌는구나!”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블록을 쌓듯 조립하는 창작이라니, 이 변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는 만화가다. 파스티슈니 포스트모던이니 하는 말은 제쳐두고, 창작자의 먹고사는 문제로 생각해봤다. 첫째, 이런 식으로 대단한 걸작을 만들지는 못한다. 개러지밴드를 배우고나서 나는 전문 뮤지션의 실력과 재능을 더 존경하게 되었다. 둘째, 하지만 그럭저럭 적당한 창작물은 누구나 만들게 되었다. 악보를 몰라도 연주를 못해도 얼마 동안 스마트폰을 조물조물하면 곡을 만들 수 있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다. 뮤지션이 작곡한 품에 삯을 치르지 않으니 나는 ‘소비자’로서 돈을 아낀 셈이다. 그런데 창작자로서 나는 어떨까. 예를 들어 요즘 몇 년 사이에 삽화 일거리가 줄었다. 그전에는 의뢰가 많았다. 글을 받고 꼼꼼히 읽어 그림을 그려 보내는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편집디자인을 하시는 분이 직접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 많아졌다. 이미지뱅크에서 사진을 골라 직접 조립하는 쪽이, 나 같은 그림쟁이에게 삯을 치르는 쪽보다 싸고 빠르니 말이다.
만화도 비슷한 변화를 겪는 것 같다. 전에는 여러 사람이 일을 나누어 했다. 요즘은 다르다. 채색은 인공지능이 해주기 시작했다. 배경은 스케치업이라는 프로그램을 많이들 쓴다. 방이건 건물이건 도시건, 남이 만든 3D오브젝트를 사다가 내 생각대로 ‘조립’하면 된다. 글도 이렇게 쓰게 될까? 아마도 곧. 이에 대해 나는 재미있는 사업 아이템이 있지만 “지면이 모자라 여기 적지는 못하겠다”. 비슷한 아이디어로 다른 사람이 돈을 벌면 “저 생각 나도 했더랬지!”라며 불평이나 해줄 생각이다.
아무려나 누구나 창작하는 시대이자 창작으론 먹고살기 힘든 시대가 온다. 목돈은 어디로 갈까. 플랫폼이 레고블록 같은 모듈을 팔아 챙길 테지 싶다. 이 얘기를 박성도님에게 했더니 이런 대답을 했다. “재밌네요, 이번 경향신문 칼럼에 그 얘기를 해봐요!” 그래서 이 글을 쓴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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