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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곳이 확실히 어디였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삿짐을 옮기고 난 후 크고 작은 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놓았다 쌓았다 펼쳤다 이동하기를 반복하고 있던 터라, 그 무엇도 확정하기가 어려운 상태였다.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테이블 어디쯤에서 발견되었다는 것. 반듯하게 두 번 접힌 정사각형의 메모지를 내 손으로 집어 들어 펼쳐서 보았다는 것. 보긴 보았으나 뜻을 파악하는 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닌 상태에서 몸이 먼저 알고 반응했다는 것. 뒷목이 서늘해지고 피가 솟구치고 살이 떨리다가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는 것. 

내 땡땡 사가시오. 여기서 땡땡은 여성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 이 불순하고 저열한 단어들은 무엇인가. 땡땡이라니, 사가라니. 이게 지금 왜 내 앞에 있는가. 이것은 애원인가 협박인가 경고인가. 그 무엇이 되었든 최종의 결론은, 침입자가 있었다, 그리고 메시지를 두고 갔다.  


테이블 어딘가 숨겨진 메모에

내 땡땡 사가시오

집 안 나갈 때 쓰는 비방이란다

비책 아닌 무언가를 헐뜯어

함부로 내던진 비방이었다


몇몇 지인들에게 알려 도움을 청했다. 신고부터 해야 한다, 그 집에서 나와야 한다, 보안카메라를 설치해 범인부터 잡고 신고해야 한다, 행동지침이 쏟아졌다. 찌질하다 비열하다 간악하다 유아적이다 여자다 남자다, 침입자에 대한 온갖 추측도 이어졌다. 글씨체가 어떠니 단어선택이 어떠니. 그즈음 이사와 관련해 연관된 사람들과 나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올랐다. 어떻게 침입을 했는지에 대해 수많은 가설도 이어졌다. 가스배관을 타고 올랐을까, 문을 따고 들어왔을까, 비밀번호를 알고 있을까.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이고 위협의 요소가 되었다.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 창문에 어룽거리는 그림자, 고양이 울음과 새의 지저귐까지. 지옥이 따로 없었다. 현관 비밀번호를 바꾸고 홈 카메라를 설치하고 문단속을 이중삼중으로 점검하고 바깥출입을 자제했다. 자발적 격리를 그렇게 한층 격상시켰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문제적 글귀는 유령처럼 내 곁을 배회하며 불안을 조성하며 위험을 상기시키며 겁박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간의 충격과 공포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의문의 시간이 찾아왔다. 아니 기껏 침입을 해서 쪽지만 두고 갔다고? 무얼 건드리지도 훔쳐가지도 않고? 그저 존재를 알리는 게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소심한 방식으로? 혹시 새로 도착한 게 아니라 뒤늦게 나타난 거라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개연성도 타당성도 부족한 침입이었다. 차차 공간이 익숙해지면서 담대한 마음이 들더니, 급기야 어디 올 테면 와봐라 내가 혼쭐을 내줄 테니 분기탱천하기까지. 그래서 이사하면 가장 먼저 집에 초대하겠노라 약속한 친구들을 불러 저녁을 먹었다. 물론 쪽지 이야기도 했다. 소설가답게.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섞어서 흥미진진하게 장르를 넘나들며. 그런데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사건의 전말이 허망하게 밝혀져 버렸다. 

그거 비방이에요, 집주인들이 쓰는. 집이 잘 안 나갈 때, 집 빨리 나가라고. 그러니까 집을 땡땡이라 생각하고, 내 땡땡 좀 빨리 사가시오, 그러는 거죠. 내 땡땡 개 땡땡, 이런 비방도 있어요. 저 아는 사람 중에 언니랑 똑같은 일이 있었는데, 혼자 덜덜 떨다가 결국 집주인을 찾아가서 따졌대요. 아무래도 보안이 안되는 집 같다, 집을 빼야겠다. 그랬더니 집주인이 자기가 써 놓은 거라고, 미처 못 치운 거라고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언니 이제 두 발 쭉 뻗고 주무세요, 이만한 집들이 선물이 없겠는걸요? 

그야말로 내 평생 처음 듣는 얘기. 듣보잡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겠구나. 일단은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끝나서 다행이긴 했지만, 마냥 웃을 수도 안도할 수도 없는, 참으로 꺼림칙한 결말이었다. 비방이라. 집이 안 나갈 때 쓰는 비상한 방책, 비밀스러운 방법이라. 나중에 알아보니, 땡땡이를 그림으로 그려서 걸어 놓는다거나, 쇠코뚜레나 장사 잘되는 고깃집 가위를 훔쳐와 현관문에 매달아 놓는다거나, 우리나라 성씨 백 개를 정성스럽게 적어서 붙이는 것을 집 잘 나가게 하는 비방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코뚜레는 의미상 수긍이 가기도 하지만, 가위는 뭐고 백 개의 성씨는 무엇인지. 

땡땡 비방을 써서 숨긴 집주인을 생각했다. 집주인은 자신이 쓴 비방이 통했다고 믿고 있을까. 그것은 비책이 아니라 무언가를 헐뜯어 함부로 내던진 비방이었다. 장판 아래 어딘가에 미처 치우지 않은 비방이 여전히 남아 있을 수도. 실체가 드러났지만 나는 여전히 공포와 함께 살고 있다. 누군가 침입할지도 모른다는…. 얼토당토아니한 비방을 비책이라 믿는 저 어리석은 자들은 언제쯤이나 사라질까.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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