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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되었다. 시점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 전쟁의 어느 즈음부터 내가 연루된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다툼이랄지 분쟁이랄지 응징이랄지 앙갚음이랄지. 결과적으로 내가 옴팡 뒤집어썼다는 것이다.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도 어렵다. 전쟁의 촉발은 쓰레기였으나, 곰곰 생각해보면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작은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이었다. 지난해 가을부터 음식물 쓰레기는 주민센터에서 무료로 나눠준 전용 수거함에 넣어 자기 집 앞에 놓아두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식당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한 접시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거의 그만큼의 쓰레기가 나온다는 사실은 잠시 뒤로 하고. 넉넉하게 두 개를 받아왔다. 그런데 누군가 그 수거함을 빌려 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은 수거함에 음식물을 그대로 쏟아붓고 가고, 또 어느 날은 냉장고 대청소라도 한 듯 묵은 김치에 곰팡 핀 된장에 비쩍 마른 오이꽁지가 뒤죽박죽, 이걸 다시 일일이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넣으려니 비용은 비용이거니와 더럽고 치사해서 울화가 치밀었다. 어쩔 수 있나, 내 집 앞에 와 있으니 내 쓰레기인 걸. 울며 겨자를 먹었다. 수거함이 비면 냉큼 안으로 들여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유일한 방어였다.
이곳 쓰레기 수거일은 화, 목, 일. 쓰레기는 자기 집 앞에 놓아두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동안에는 공원 앞이나 주차장 주변이 자연스럽게 쓰레기정거장이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고 벌금과 엄포의 경고문이 붙으면서 정거장이 폐쇄되었다. 되는 대로 슬며시 쓰레기를 갖다 버리던 사람들이 갈 곳을 잃은 것. 공공연한 정거장이 없어졌으니 새로운 정거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쓰레기 양이 제법 되는 상가 앞이 안성맞춤. 거기에 골목 코너에 있어 오고가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금상첨화. 우리 집은 무단투기의 정거장이 되기에 얼마나 좋은가. 괘씸하긴 하지만, 조용한 주택가에 식당을 차려 어수선하게 만든 죄도 있으니, 작은 봉투 정도는 함께 버려주마 마음을 다잡았더랬다.
검은콩두유를 좋아하고, 오랫동안 사용한 얇은 빗을 최근에 부러뜨렸고, 새카맣게 염색한 파마 머리에(빠진 머리칼을 모아 손가락으로 둘둘 말아 버리는 습관이 있는), 근육통 쿨 파스를 자주 붙이고, 열 알의 종합감기약을 다 먹은, 사람. 짐작이 가는 데가 있지만 파스와 약봉지에 패스. 피자와 감자탕을 시켜 수입맥주를 마시며 그 맥주 캔에 담배꽁초를 버리면서 파티라도 벌였을 사람들. 이놈들 잡히기만 해봐라 괜한 발길질로 가까스로 화를 누르고. 뼈다귀를 그대로 담은 치킨 배달박스에서부터, 깨진 유리에 술병에 콜라병에 뜯어진 슬리퍼에, 화장실 휴지통을 비운 것이 분명한 쓰레기에. 내 입이 자꾸 더러워지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쓰레기더미가 도착했으니, 차로 실어다 옮기지 않고서야 불가능할 만큼의 양에, 어디 업소인 것이 분명한 수많은 와인병과 깨진 와인잔들, 온갖 음식물 쓰레기와 생활쓰레기들이 어수선하게 널려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건물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쓰레기 수거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쓰레기 분리수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수거하지 않았다고, 앞으로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무단투기로 벌금을 물리겠다 했다고.
쓰레기, 제대로, 하세요. 그 말이 참 불편하고 억울했다. 여차저차 그간의 일들을 설명했다. 일단 쓰레기는 우리가 처리하고, 건물주는 방범용 카메라를 추가하고 경고문을 다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카메라와 경고문이 효과가 있었는지, 어쨌거나 그 후로 쓰레기가 줄기는 했다.
내가 관여한 것은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진짜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으니. 건물주가 작정하고 CCTV를 들여다봤단다. 우리의 결백을 알리려면 결백하지 않은 누군가를 찾아내서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
며칠 만에 현장을 잡았는데, 그게 하필이면 옆집 할머니였다. 검은콩두유를 좋아하는 근육통 파스의 그 할머니. 건물주는 사진을 캡처해 무단투기로 신고를 했다. 다만 노인이니 벌금은 물리지 말고 계도를 하는 정도로 끝내면 좋겠다고. 어쨌거나 민원이 들어왔으니 할머니에게 벌금을 물리는 행정처분이 내려졌다.
할머니는 억울했다. 그깟 쓰레기 좀 버렸다고 신고에 벌금이라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할머니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민원전쟁. 쓰레기 수거일이 아닌데 상자들을 밖에 내놨다, 민원(그건 폐지 줍는 할머니를 위해 일부러 내놓는 거라고요. 할머니도 종종 가져가셨잖아요). 음악소리가 시끄럽다, 민원(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최대한 조심해볼게요). 음식냄새가 집으로 들어온다, 민원(후드는 3층까지 올려서 그쪽 집 반대방향으로 향하게 공사를 했다고요).
온갖 민원이 들고나는 중에 등살이 터진 사람들이 또 있었으니, 바로 쓰레기 수거업체 담당자들이다. 그들이 보기에 이곳은 쓰레기 민원의 메카.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고 갔다, 왜 쓰레기를 수거해가지 않았느냐, 배출일도 아닌데 쓰레기를 밖에 내놨다, 그 집 유리 쓰레기 때문에 다칠 위험이 있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에서 냄새가 난다, 등등. 전화가 오고 불려가고 다시 출동하고. 그래서 칼을 뽑았다. 민원이고 뭐고 우린 우리 할 일만 하겠다. 쓰레기 배출 원칙을 완벽하게 지키지 않으면 절대로 수거해 가지 않겠다. 종량제봉투에 흙이 들어 있어서 거부. 상자들을 끈으로 묶지 않아서 거부. 상자와 종이를 분리하지 않아서 거부. 플라스틱과 비닐봉지가 섞여 있어서 거부. 부피가 큰 플라스틱을 포대가 아니라 비닐에 넣어서 거부. 유리병 포대는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거부. 거부와 거절의 연속.
도리가 없었다. 업체의 말대로 완벽하게 원칙을 지킬 수밖에. 아주 일찍 말고 너무 늦게도 말고, 오후 7시에서 9시 즈음, 일하다가 기회를 봐서 쓰레기 준비 땅. 유리는 찢기지 않는 포대자루에 적당히, 일회용 용기는 깨끗이 씻고 라벨을 떼고, 아차 종이상자는 테이프를 떼어내야지. 버릴 때마다 매번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옆집 할머니의 궁싯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술집이니 식당이니 뭐가 이렇게 많이 생겨서, 동네 시끄럽게,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는데, 에이 참. 어쩐지 벌을 서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무릎 꿇고 앉아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는 벌. 무슨 죄의 벌인지는 확실치 않다.
<천운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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