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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은 ‘조선 제일의 검’으로 불렸다. 기분 나쁘지 않을 별명이다. 유능한 검사라는 뜻이니 말이다. 윤석열은 한 수 위였다. 그가 ‘강호 무림의 최고 칼잡이’라는 것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칼잡이의 지존이라는 표현이 좀 민망하게 들릴 수 있겠다 싶은데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것 역시 이름난 검사에게 붙이는 상찬(賞讚)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군대, 경찰 등과 함께 폭력을 합법적으로 행사하는 국가기구다. 국민의 재산권을 박탈하거나 신체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권력기관이다. 그래서 검사 자신들은 칼을 쓰는 무사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윤석열과 그의 수하 한동훈은 자기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고수인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두 무림 고수가 중원으로 나와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되면서부터다. 그 후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시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처음에는 좀 지나친 표현이 아닐까 생각도 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검찰공화국’이란 말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검사 윤석열은 의뭉하고도 현란한 칼 놀림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칼끝은 일찌감치 정치를 향해 있었고, 조국의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던 ‘정치의 시간’을 찢고 들어갔다. 그리고 각종 문파를 제치고 무림을 평정했다. 국회의원 한번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정치에 입문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아 단숨에 대통령이 되었다. 이러한 ‘칼의 서사’는 검찰공화국의 초석이 되고 있다.

검사로서 쓴 ‘칼의 서사’를 밑천 삼아 대통령이 된 그는 계속해서 검찰을 정치 권력의 기반으로 다지고 있다. 정부의 주요 권력기관의 책임자는 검찰 출신이 차지했고 대통령실, 행정부서, 국정원 등에는 예외 없이 자신을 따르던 충직한 검사가 배치되었다. 정치 사회에는 인적 네트워크가 없어서 그가 검찰 출신을 쓰는 것이라고 했지만 너무 적나라하여 설명력을 잃었다. 그래서 윤 대통령에게는 ‘검사복을 양복으로 갈아입고’ 선거에 나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기보다는 ‘검사복 위에 양복을 걸쳐 입고’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야 한다는 조롱이 따르고 있다.

그 조롱은 70, 80년대 제3세계 군부 권위주의 지배유형을 빗댄 것이다. 당시 군부의 권력 유지 방식에는 군복을 입고 직접 통치하는 유형, 군복을 양복으로 갈아입고 통치하는 유형, 군복 위에 양복을 걸쳐 입고 통치하는 유형, 그리고 양복을 입은 민간에게 권력을 이양하여 통치하는 유형 등이 있었다. 사람들이, 자유롭고 공정한 민주 절차를 통해 선출한 윤 대통령을 ‘검사복 위에 양복을 걸쳐 입은’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칼의 서사’로 만든 권력의 기반, 핵심 권력의 인적 구성 등을 보면 검찰이 힘의 고갱이라는 의미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투와 거듭되는 허술한 행동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윤 대통령은, 아직 검찰의 물이 빠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검사다. 정치인의 덕목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칼을 다루고, 칼을 힘의 수단으로 삼으며 칼의 서사로 대통령이 된 그는 정치인은 칼이 아니고 말을 다루는 직업이며 말이 힘의 원천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정치는 칼이 아닌, 말로 하는 공감의 예술이다’라는 데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아니 이해가 아예 없는 것 같다.

최근 윤 대통령의 칼끝이 전 정부의 이 구석 저 구석을 겨누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또한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을 불러내는 근거다. ‘검사복 위에 양복을 걸쳐 입은’ 대통령은 자신이 썼던 ‘칼의 서사’에 아직도 심취해 있는 것 같다. ‘정치의 시간’을 찢었던 칼의 효능을 아직도 믿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걱정이 들어 한마디 하고 싶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강호 무림의 최고 칼잡이’라는 말은 칭찬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무능한 대통령의 표식일 뿐이다. 대통령은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했던 ‘칼의 서사’를 잊어야 한다. 대신,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하는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으시라. 그리고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칼에 대하여’ 생각해 보시라. 어느 문학평론가가 얘기하듯이 세상에 칼로 ‘베어지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벤다고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시라. 윤 대통령은 ‘칼의 서사’로 만들어진 권력 판타지를 넘어서지 못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시퍼렇게 벼린 칼날과 손목의 근육은 대통령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이다. 칼끝을 거두어야 한다. 칼로 흥한 자는 결국 어떻게 된다는 칼의 잠언은 새삼 들출 필요도 없다. 대통령은 팔뚝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김태일 장안대 총장>

 

 

연재 | 정동칼럼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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