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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의도 정가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내로남불’이다. 정치인의 뼛속에는 ‘그때그때 달라요’ DNA가 숨어 있다. 자신과 당의 유불리에 따라 과거를 싹 잊어버리고 대응하는 조변석개(朝變夕改)의 ‘말’ 정치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인 ‘내로남불’을 유행어로 만들었다. 여당에서 야당, 야당에서 여당으로 공수가 교대되면서 되풀이되다 보니 악순환의 정치문화로 뿌리내렸다. 상황에 따라 변신해 과격하고 거친 언사를 쏟아내는 반응은 히스테리 증상처럼 보인다. 그러니 정치의 불신은 당연한 결과다. 공인인 정치인이나 정당의 말이 때에 따라 달라진다면 신뢰받기 어렵다.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입각설을 둘러싼 여야의 날선 대립도 ‘내로남불’로 비난받고 있다. 야당 시절에는 극단의 표현으로 혹평을 쏟다가도 여당이 되면 180도 태도를 바꿔 이러저러한 이유로 합리화하는 모습이 카멜레온의 전형으로 비친다.

조국 전 민정수석 26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임 수석 인선안 발표에서 떠나는 소회를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내가 행위자일 때와 관찰자일 때가 일관적이지 않은 것은 인간의 이기적인 편향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할 때와 남이 하는 것을 바라볼 때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가깝다는 것이다.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이중 잣대는 자신의 자존감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방어기제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가혹하게 비난하다가도 자신이 그 상황에 처했을 때 그 비난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으려고 변명하는 모순적 태도를 그저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훗날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고 역공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니만큼 정치인이나 정당은 달라야 한다. 신뢰의 정치를 위해서도 그렇다. 그러려면 언행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의 언행을 평가할 때 그가 처한 상황이나 처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등등을 알아낸다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을 흔들고 있는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입각설에 대한 여야의 논평대립을 한번 들여다보자. 지금 집권 여당이 된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직행을 “공정한 법 집행을 해야 할 법무부 장관에 최측근 민정수석을 기용한 최초의 사례이자 최악의 측근인사·회전문 인사”라는 논평을 냈었다. 그랬던 민주당이 여당이 되어 똑같은 상황을 옹호하고 있는 모양이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내로남불’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지금은 헌법질서에 대한 모욕이자 보복·공포정치의 선전포고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치가 검찰권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명의 민정수석은 모두 검찰 출신이었다. 검사 전성시대의 절정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이 다 검찰 출신으로 채워졌던 때다. 거기에 청와대 파견검사까지 합치면 청와대가 일선 검찰청 이상의 진용을 갖추고 있는 모양새여서 검찰공화국 소리를 들을 만했다. 청와대의 검사들, 검찰에 장악된 법무부가 청와대와 검찰 간의 끈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대통령 최측근 민정수석이 곧바로 법무부 장관이 되면,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사정라인인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연결고리를 통해 검찰의 중립성이 심히 해쳐질 것이라는 우려가 설득력이 있었고 현실화되기도 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고리는 매우 느슨해졌다. 그만큼 검찰권 장악 우려는 해소된 상태다. 아무리 대통령의 분신으로 인정받는 인물이 법무부 장관으로 가더라도 검찰을 손아귀에 넣는 것은 제도적으로도 불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청와대에는 파견검사도 없고, 검찰청법 개정으로 검사파견도 불가능해졌다. 민정수석비서관도 검사 출신이 아니다. 검찰이 장악했던 법무부도 상당부분 탈검찰화가 이루어졌다. 대통령비서실장,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지휘라인이 비검찰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확 달라진 상황이다. 사람만 달라졌다면 야당의 우려가 언제든지 현실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맘만 먹으면 인사권으로 검찰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검찰의 관계를 이전 정부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여당의 태도를 ‘내로남불’로 깎아내릴 수 있다.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행’이라는 명목만 보면 똑같다. 그러나 제도와 시스템, 실질이 다르다. 그리고 기획하고 착수했던 법무·검찰 개혁의 완수라는 법무부 장관의 임무도 다르다. 

올바른 비판을 하려면 자기가 경험했던 것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시각과 시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반대편에 서 보고 한쪽으로의 치우침을 경계해야 대립정치의 악순환도 끊어낼 수 있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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