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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사용자라면, 2015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이슈로 어렵지 않게 페미니스트 해시태그 운동을 꼽을 것이다. 몇몇 언론 매체의 여성혐오 분위기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이 운동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기점으로 확대되었다가 지금은 성차별 발언을 일삼는 연예인에 대한 퇴출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발도 만만치 않아서 남성 중심의 호불호 판정단이 쟁점마다 반대편 타임라인에 줄지어 서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잠시 ‘정치적 올바름’이나 ‘이념적 정당성’의 잣대를 접어두고 이 운동이 출현한 맥락을 살펴보면 어떨까? 남녀 상호 간 이해 증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을까?

먼저 1990년대 초반으로 향해보자. 이 시기 한국의 출생아 남녀 성비는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압도적인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었다.

특히 1990년에는 불균형의 최고점을 찍었는데, 여성 100명당 116명의 남성이 태어났다. 전통적인 남아선호 사상이 첨단 의료기기와 결합해 여성의 몸을 도구화한 결과였다.

상황이 변한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출생아의 부모 세대가 1960년대생에서 1970년대생으로 넘어갔고, 출산율의 추이 역시 2002년을 기점으로 1.20대로 떨어졌다. 부동산 폭등기로 이제 막 진입하던 시기에, 아들딸 구별 말고 한 자녀만 낳아 기르기로 마음먹은 젊은 부모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성비 불균형 역시 완화되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성비 불균형의 최고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반생들이 대학 문에 들어설 무렵인 2009년, 여학생의 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00년만 해도 남학생의 진학률은 여학생보다 5% 정도 앞섰지만, 2009년을 기점으로 남녀 간 진학률이 역전되었고, 이후 격차가 더욱 벌어져 2014년에는 7%대의 차이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5년, 이제 그 여학생들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 젊은 여성들의 어머니들, 즉 베이비붐 세대의 여성 중 일부는 젊은 시절 민주화 열기에 힘입어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은 바 있었다. 물론 당시 페미니즘 운동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금세 사그라졌고, 그 영향권 아래 놓였던 여성들 역시 가정주부로 변신하여 전선에서 이탈했다.

이 과정에서 신도시 아파트와 대형할인매장과 사교육은 중산층 가정주부로 이 여성들을 포획하는 데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의 딸들에게도 이 포획 장치가 온전히 작동할 수 있을까? 고도성장기에 가부장제를 기본 프레임으로 삼아 조립된 중산층 핵가족 모델은 가장의 근로소득뿐만 아니라 아파트를 통한 자산 증가에도 의존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성장 시대 진입과 더불어 중산층의 조난신호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추정컨대, 페미니스트 해시태그 운동의 출현에는 이런 맥락들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남녀 성비 불균형 시대에 태어났으나 동년배 남성보다 더 높은 비율로 대학에 진학했으며 지금은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거나 준비 중인 여성들, 그들 중 일부가 ‘어머니’와는 다른 삶의 모델을 모색하면서 불평등의 장벽을 체감하고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장벽이란 삶에 대한 여성의 자율적 선택권을 가로막고 서 있는 남녀 임금 격차 OECD 1위, 남녀 평등 지수 117위의 남성 중심적 체제이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는 예쁘고 똑똑하거나 드세고 못생긴 여성, 여성 우월주의자로 몰리기 일쑤다. 사진은 다큐영화 <나는 10대 페미니스트였다> 포스터. (출처 : 경향DB)


그렇다면 이 운동은 이후에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까? 뭇 남성들의 예측처럼 “억센 언니들”의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고 말까?

일단 IMF 외환위기 발발 30년 이후인 2027년의 근 미래로 시선을 돌려보자. 40만명대의 출생 인구를 기록했던 저출산 1세대가 이 시점이 되면 사회에 진출한다. 그때쯤이면 이들의 ‘인구력’은 이미 ‘대학 산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파괴력을 증명했을 것이다.

과연 2027년의 한국 사회는 이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 앞에서도 지금과 같은 불평등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 흥미진진한 질문을 되새겨보면, 페미니스트 운동이 이후에도 세를 확대하며 지속되리라는 예측은 너무 뻔한 시나리오처럼 보인다.


박해천 | 동양대 교수·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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