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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콕’하는 동안 ‘확 찐 자’가 되어 ‘살천지’가 되어가고 있다. 비상이다! 예전에 마라톤을 준비하며 읽었던 요슈카 피셔의 <나는 달린다>를 다시 꺼냈다. 

독일 환경부 장관이었던 피셔는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음식에 의존해 112㎏ 뚱보가 되었다. 이로 인해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에 빠졌고 아내와도 이혼하게 되었다. 더 이상 욕망에 끌려다니는 파괴적인 생활 방식으로 살 수 없다고 결심한 그는 매일 달리기 시작했다. 75㎏의 날씬해진 외모 변화와 함께 달리기로 내적인 평온을 찾으며 삶의 스타일까지 모두 바뀌었다.

풀코스 마라토너는 30㎞쯤 지날 때 극심한 고통을 겪는데 이때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며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느낀다고 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희열을 느끼는 역설이 일어나며 점점 결승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또한 마라톤은 함께 참여한 사람들에게 일체감과 동료애를 느끼게 하고 생에 감사하게 만든다.

마라톤 대회는 참가자의 탈진을 막기 위해 5㎞마다 물에 적신 스펀지와 바나나, 물컵 등을 준비한 급수대가 마련된다. 마라토너가 달리면서 수분과 영양을 보충하고 길가에 종이컵과 껍질을 던지면 봉사자들이 치워준다. 많은 인원이 급수대에 몰리게 되면 그냥 통과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러면 다음 급수대가 나타날 때까지 꼼짝없이 버텨야 한다. 나 역시 속도 조절을 못해 지나쳤는데 다른 참가자가 스펀지와 물을 챙겨주었다. 고마운 일은 더 있었다. 마라톤 베테랑들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며 기록을 앞당길 수 있도록 참가자들을 돕는다. 3:30이 쓰인 풍선을 매단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면 결승선에 3시간30분 안에 들어올 수 있게 된다. 페이스메이커를 놓치고 정신마저 희미해지며 포기할까 싶을 때는 길가에서 응원하는 시민들의 힘찬 목소리에 기운을 얻어 완주할 수 있었다. 

재난이 장기화되며 모든 국가가 코로나19 마라톤을 벌이고 있고 우리나라는 스마트한 대응으로 전 세계의 페이스메이커가 된 것 같다. 우리는 생활 반경을 최소한으로 좁히고 재난기본소득을 나누며 포기하지 말자고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 그리고 물리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중이다. 코로나19가 만든 어두운 터널의 어디쯤을 지나는지 현재 우리는 알지 못한다. 코로나19와 마라톤은 다르지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의 삶에 몰입하는 것이다. 

42.195㎞를 완주하려면 숨을 헐떡이고 몸이 천근만근일수록 오직 이 순간, 호흡 한 번, 뜀걸음 한 번에 집중해야 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인내하면 무뎠던 말단세포의 감각이 살아나고, 군더더기 많던 내면이 필수적인 것만 남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주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며 삶의 질서가 재편되는 것이다. 지금 아이들은 자신과의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교와 학원을 벗어나 자아의 성장을 위한 여행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다시 만난 날 엄청나게 쏟아낼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깨달음과 성숙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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