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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24일에 누군가 태어났다면, 그는 이제 대학교 2학년이 될 겁니다. 아니면 직장에 다니거나, 군에 있을 수도 있겠네요. 19년. 한 생명이 태어나 장성할 만큼 긴 세월입니다.

그날 낮 12시20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총성 한 발이 울립니다. 권총 M9 베레타에서 나온 총알이 소대장 김훈 중위의 머리를 관통했습니다. 김 중위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인은 분명했으니, 자살인지 타살인지만 밝히면 그만이었습니다.

장관께서도 알고 계시듯, 사망사건에서 가장 확실한 증거는 주검과 사건 현장입니다. 총에 묻은 지문, 총과 손에 묻은 화약가루, 총알의 방향, 총이 놓인 위치, 그리고 밀착사인지 근접사인지만 밝히면 금세 결론을 낼 수 있었습니다. 사건 직후, 군 당국은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그건 지문, 화약가루 등 핵심적인 증거들에 기초한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관행적 추정이었을 뿐입니다. 기껏해야 김 중위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다는 게 자살의 근거였습니다. 그나마 사건 발생 일 년이 지난 뒤에서야 밝혀낸 ‘사실’이었습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김훈 중위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정예 장교였다거나, 그의 아버지도 같은 사관학교 출신의 예비역 3성장군이고,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했다는 등의 자살하지 않을 만한 정황들도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주검과 현장입니다.

그날 1998년 2월24일은 50년 만의 정권교체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니, 판문점처럼 첨예한 지역에선 별 일 없어야 했을 겁니다. 그런 강박 때문에 자살로 조작한 건지, 아니면 기초적인 조사가 부족해 그냥 지나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첫 단추는 그렇게 꿰어졌습니다.

김 중위 사건이 여론의 주목을 받을 때마다, 군 당국은 셀 수 없이 많은 조사를 반복했습니다. 특별조사, 합동조사 등 명칭은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지만, 조사 결과는 한결같았습니다. 바로 자살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김 중위 가족이나 저처럼 김 중위 사건을 직접 조사했던 사람은 물론, 대법원, 국민권익위원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국방부 밖의 국가기관들의 결론은 언제나 딴판이었습니다. 결코 자살일 수 없다거나, 범인을 특정할 수 없으니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거나, 초동수사가 부실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가릴 수 없다는 결론들입니다. 사건은 하나인데, 사건에 대한 결론은 군의 안팎이 매번 달랐습니다.

이쯤 되면,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군 당국의 조사 결과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게 당연할 겁니다. 물론, 장관님은 이런 견해에 동의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요. 국방부 특별조사본부를 비롯한 관련 부서들에선 꾸준히 김 중위가 자살했다는 보고만 반복할 테니까요.

유가족, 언론, 인권단체와 국가기관까지 나서 김 중위는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각도로 밝혀냈지만,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은 지 19년이나 지났지만, 김 중위의 장례는 아직도 치러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 중위는 벽제 보급대대 창고 한쪽 구석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은 유가족의 고통은 곁에서 지켜보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자식의 죽음도 힘겨웠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은 그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국가기관들은 군 당국이 유족에게 사과하고 김 중위는 순국으로 인정하는 등의 명예회복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군 당국은 그저 요지부동일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국방부에 묻고 있습니다. 장군의 아들도 군에서 죽으면 저런 취급을 당하는데, 평범한 젊은이들은 오죽하겠냐는 질문입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님! 김훈 중위 사건은 오래된 숙제지만,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습니다. 부담도 없습니다. 김 중위 사건의 진상을 규명한다고 군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도 없고, 그 때문에 전력이 떨어질 일도 전혀 없습니다. 그저 국민권익위원회 또는 대법원의 결정만 좇아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다고 유족의 상처가 아물진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 국가와 군은 그저 강도떼에 불과하다는 오명에서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 장군이 자주 인용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입니다. “국가에 정의가 없다면, 강도떼와 무엇이 다릅니까?”

저는 우리 체제가 1600년 전 교부의 말에 기댈 만큼 허약하지 않다고 믿고 싶습니다. 아니, 제 바람과 별개로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김 중위 사건은 그저 장관님의 결단만으로도 얼마든지 해결 가능합니다.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해결해야 합니다. 김 중위 가족의 고통에 대해 사과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김 중위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다시는 이런 참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관련 업무를 혁신하면 됩니다. 난제처럼 보이더라도, 오로지 진실의 편에만 서면 어려울 게 없습니다.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억울함을 덜고, 우리 공동체가 다만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도록 하는 게 바로 장관님의 소임입니다.

장관께서 김훈 중위 사건을 공명정대하게 푼다면, 그건 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우리 군의 미래가 여기 달려 있습니다. 병력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무기체계를 운용하는가도 중요하겠지만, 훨씬 더 중요한 건, 군이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겁니다. 그게 가장 큰 전력이고, 그게 가장 확실한 무기입니다. 전력 극대화의 숙제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바로 장관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군의 미래는 김훈 중위, 허원근 일병 사건처럼 잘 알려진, 그러나 군 당국의 결론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건들을 어떻게 푸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일마저 다음 정권으로 넘길 수는 없습니다. 곧 김 중위 19주기입니다. 벌써 19년입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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