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찍이 로버트 패티슨은 <On Literacy>(1984)에서 “읽고 쓰는 능력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시대 이후 아직 한번도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으며 오직 변화되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책자본의 등장, 인쇄술의 발견, 디지털 혁명 등 책의 혁명이 세 차례 있었지만 읽고 쓰는 일의 중요성은 늘 강조되었습니다.
아르만도 페트루치는 <읽는다는 것의 역사>(1997)에서 “여기에 기술된 책과 독서의 미래, 즉 개인적인 실행, 개인적인 선택, 규칙과 계층의 거부, 생산 면에서의 혼란과 규율 없는 소비, 축적된 각기 다른 지식과 정보의 혼합, 매우 다양하면서도 유사한 수준의 생산 등이 혼합된 미래를 얼마나 긍정적인 현상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이 시점에서 묻는다는 것은 정말로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는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그는 이어서 “사실 독서는 광범위하고 복잡한 현상이다. 앞으로 10년 또는 20년 안에 그 방향은 의심할 나위 없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50년 또는 100년만 지나면 독서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하고자 한다면 그 현상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아직 너무 이르다”고 말하며 ‘읽기’의 미래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가 판단을 유보한 1997년과 인문학자 김용규가 <생각의 시대>(살림)에서 “지식이 3일마다 2배씩” 늘어난다는 2030년의 가운데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 디지털 혁명에 따른 읽기의 실체를 판단해 보아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요?
마침 최근에 읽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나 읽은 책의 독후감을 담은 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성학 연구자인 정희진은 <정희진처럼 읽기>(교양인)에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한 분야만 공부한 전공자보다 더 깊게, 더 많이 알게 된다. 개인이 축적한 지식의 양 때문이 아니다. 이는 구조적으로 당연한 일인데, 여러 학문을 두루 접하면 지식의 전제와 지식이 구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알게 되기 때문”이라며 관점을 중심으로 “모든 분야의 지식”을 다룬 책 읽기를 권합니다.
정희진은 책을 읽는 방법은 크게 ‘습득(習得)’과 ‘지도 그리기(mapping)’의 둘로 나뉜다고 말합니다. ‘습득’은 “말 그대로 책의 내용을 익히고 내용을 이해해서 필자의 주장을 취하는(take) 것”이고, ‘지도 그리기’는 “책 내용을 익히는 데 초점이 있기보다는 읽고 있는 내용을 기존의 자기 지식에 배치(trans/form 혹은 re/make)하는 것”입니다.
정희진의 설명은 이어집니다. “습득은 객관적, 일방적, 수동적 작업인 반면에 배치는 주관적, 상호적, 갈등적이다. 자기만의 사유, 자기만의 인식에서 읽은 내용을 알맞은 곳에 놓으려면 책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책의 위상과 저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자기 입장이 있어야 하고, 자기 입장이 전체 지식 체계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가, 그리고 또 지금 이 책은 그 자리의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지난 시절 독서운동은 주로 ‘습득’에 방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상업주의적인 독서운동단체와 독서운동을 벌이는 일부 교사단체에서 ‘독서능력검정시험’을 도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 대표적입니다. 작년에 KBS와 일부 교육청이 연합해 시행하려 했던 ‘KBS 어린이독서왕’도 책의 내용을 단순하게 암기시키려는 정말 한심한 이벤트였습니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도 평생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가 폭발하는 시대입니다. 게다가 100세 시대입니다. 이제 한 사람이 이끌고 나머지가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여럿이 함께 책을 읽고 공감을 나누는 수평적 관계의 시대입니다.
정희진은 “책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은 역사 최대의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책 속엔 아무것도 없다. 저자의 노동만 있을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사상에서 이데올로기(‘거짓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담론이 있다. 저자의 입장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보다 저자와 갈등적(against) 태도를 취할 때 더 빨리, 더 쉽게,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젠, 함께 읽기다>(신기수 외, 북바이북)의 저자들도 책에는 정답이 없고, 그저 생각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골방독서에서 광장독서로, 지적 영주에서 교양시민”으로 바뀌어야 하며, “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를 지향하는 독서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책 속의 함께 책을 읽어 인생을 바꾼 이들의 경험담은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안찬수 사무처장은 한 좌담에서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시대에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핵심적인 교육 내용” 두 가지는 ‘책 읽기’와 ‘손노동’이라고 말했습니다. “책으로 표현되는, 앞선 시대의 지혜, 지식, 정보, 스스로 문제를 설정해서 탐구해 들어갈 수 있는 능력”과 “사회가 점점 발달하면서 기계가 감당하는 게 늘어날 텐데, 기계가 할 수 없는 것, 예를 들어 손으로 글쓰기, 붓글씨, 조형물 만들기, 목공, 텃밭 가꾸기, 악기 다루기” 같은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이 중요해진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가까운 이들과 함께 책을 읽은 다음 ‘○○○처럼 읽기’란 담론을 한번 만들어 보시지 않으렵니까?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지난 칼럼===== > 한기호의 다독다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퍼블리터’의 시대 (0) | 2014.12.01 |
---|---|
테크놀로지 실업과 인간의 존엄성 (0) | 2014.11.10 |
우유부단한 ‘결정장애 세대’ (0) | 2014.09.29 |
‘사물인터넷’과 ‘유리감옥’, 그리고 ‘벌거벗은 미래’ (0) | 2014.09.01 |
[한기호의 다독다독]아날로그 종이책이 디지털 감성을 입는다면 (0) | 2014.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