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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민주당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사람들이 민주당을 주목하고 여기에 표를 몰아 주는 게 결코 이 정당이 믿음직스럽다거나 듬직해서 그런 게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너무 혐오스럽고 한나라당이 너무 싫어서, 바꿔야 한다, 그런 게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 자기들끼리는 엄청 다르다고 할지 몰라도, 소위 ‘빅 스리’ 세 명 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다.
어차피 그 사람들이 좋아서 힘을 모아 주자고 하는 게 아니다. 그걸 ‘아, 사람들이 나 좋아하나 봐’, 이렇게 착각하면 진짜 한 방에 훅 간다. 착각은 자유지만, 자신에게 안겨진 인기가 한시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게 긴 레이스를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사실 그것만 잊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설령 유시민이 통합 후보가 된다고 하더라도 난 그에게 표를 줄 생각이 있다. 어차피 도토리 키재기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인간됨됨이나 별로 객관적이지도 않은 인물평보다는 무슨 가치를 내걸고, 무슨 정책을 약속하는지, 그걸 더 보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문민이라는 걸 한 번 했었고, 국민이라는 것도 해봤고, 참여도 해봤다. 물론 좋은 말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지만, 주체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남은 건 민중과 시민 두 가지 정도이다. 한국에서 정책을 만드는 집단은 네 개가 있다.
첫 번째가 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민중단체들, 이런 데가 자신들의 현실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정책을 만들어 낸다.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으로 들어오는 많은 정책들은 일부는 시민단체가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민중단체들이다. 자신의 문제라서 생동감 있는 정책들이 적지 않다.
두 번째가 주로 민주당에 정책을 제공하는 시민단체들. 분당 이전의 통합 민주노동당 시절에는 시민단체와의 교류가 좀 있었는데, 오히려 분당하고 나서 양쪽 관계가 더 소원해졌다. 물론 특정 사안에 대해서 시민단체가 한나라당 의원하고도 같이 협력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한나라당에 법안을 주는 일은 거의 없다.
세 번째는 공무원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니 하는 얘기는 다 그냥 하는 얘기들이고, 고위직 공무원들이 쪼르르 달려가서 한나라당에 정책을 아예 통으로 던져 주거나 아니면 자문해 주는 일은 벌써 수년째 계속되는 일이다. 그게 한나라당의 진짜 힘이기도 한데, 개별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법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명박 정부’라고 불렀던 이번 정권은 현실적으로 ‘고급 공무원 정부’인 셈이다. 물론 민주당 성향의 공무원들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간부급은 공무원이든 공기업이든, 기본적으로 한나라당 성향이다.
네 번째는 이익단체들. 다양한 종류의 이익단체들이 있는데, 전경련같이 덩치 큰 데도 있고, 그냥 작은 협회들이나 직능 모임들이 있다. 여기도 기본적으로는 한나라당 성향들이다. 물론 참여정부에서 삼성 보고서들을 적극 채택한 적이 있었는데, 그러다가 정권 날려 먹은 전례가 있다. 아무려면 삼성이나 현대에서 고급 정보를 민주당 쪽에 주겠는가?
크게 보면, 한국의 정책은 민중단체와 시민단체가 한편 먹고, 공무원과 이익단체가 한편 먹고, 이렇게 싸우는 형국이다. 물론 한편 먹는다고 해도, 민중진영과 시민진영 사이에는 긴장이 팽팽한 반면, 공무원과 이익단체는 아주 쫀득쫀득하게 한편이 된다.
로펌을 정거장으로, 공무원 나갔다가 다시 장관하고, 또 나갔다가 이번에는 강만수 산업은행 총재처럼 또 차관하는 거 봐라. 그게 한나라당이 중앙을 통치하는 방식이다.
이 구도에서 일반 국민들이나 시민들은 진짜 교과서에나 있는 개념이었다. 순서대로 보면 시민단체들의 힘으로 민주당 정권을 만들었으니, 이번에는 민중진영이 우리도 한번 하자, 그런 게 맞는다.
2002년 대선 때, 유시민 장관 등 당시의 노무현 지지자들이 이번 한번만 도와주면 다음에는 꼭 민주노동당 돕겠다고 했었다. 물론 그런 약속은 지켜지는 법이 없다. ‘민중 대연정’, 아직은 시기 상조인 것 같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냐? 시민단체도 한국에서는 전부 고전 중이라서 새 정권을 만들기 위해서 심판 역할은 할 수 있지, 주도적으로 에너지를 만들 형편은 아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흐름을 만든 것은 바로 2008년의 촛불집회로부터 나왔다는 점이다. 진짜 시민, 그들이 정치의 맨 앞에 서 있는 것, 그게 지금의 우리 현실 아닌가?
대통령은 경찰의 힘으로 그걸 때려잡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때의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선거의 힘으로 더 증폭된 것 아닌가? 촛불시민의 에너지, 그게 지금 한국 정치를 움직이는 진짜 힘 아닌가? 솔직히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 혹은 농민들의 강철 대오, 그런 게 현 정국을 만든 건 아니지 않은가? 진짜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정권을 만든다고 하면, 그건 ‘시민의 정부’라고 불리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뭐가 시민의 정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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