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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숙 | 소설가


여기,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한 가족이 투표장소로 향하고 있다. 한 가족이지만 지지하는 후보도, 선거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한지붕 아래 살지만 고향도 다르고 성장과정도 다르며 사회에서 처해있는 상황도 다르다. 


아버지와 딸은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다. 딸은, 정책에 대한 뚜렷한 비전도 없는 박근혜 후보가 독재자의 딸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날개가 되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다는 사실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직 투표가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딸은, 20대 투표율이 관건이라는 말에 친구들에게 카카오톡으로 투표를 독려하기에 여념이 없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카카오톡 친구를 맺고 TV토론에서 이정희 전 후보의 발언에 속시원해한다. 아버지는 <나꼼수>가 딸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놨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정치란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닌데 민주통합당이 하는 ‘짓거리’를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노무현 참여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는 소수의 의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엄마는 남편과 딸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는다. 둘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아직 마음을 정할 수 없다. 엄마는 자신도 미워하지 않는 박정희를 왜 딸이 미워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자기세대야말로 박정희 정권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1970년대 환기가 되지 않는 방직공장에서 일하다가 폐병에 걸려 거의 10년 동안 약을 먹어야 했다. 옆동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소식을 전해듣고서도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어쨌든 엄마는 경제발전을 이뤘으니 자기 시대의 희생이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부모 없이 자란 ‘희생양’ 박근혜에 대한 연민도 있다. 물론 TV토론에서 박근혜 후보가 보여줬던 빈약한 논거에서 나오는 아슬아슬함이 맘에 걸린 것은 사실이다. 문재인처럼 점잖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지만, 이정희처럼 자기 눈에 다소 ‘과격해’ 보이는 사람과 한편인 것 같아 맘에 걸린다. 


아들은 냉소적인 부동층이다. 회사일에 지친 그는 오랜만에 찾아온 휴일에 잠이나 자고 싶지만, 굳이 투표를 해야 한다면 칸 밖에 도장을 찍고 오겠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투표가 국민의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이라면, 자신의 의사는 ‘기권’이라는 것이다. 17대 대선 때 그는 구직 중이었다. ‘일자리 약속’에 BBK는 덮어두고 이명박에게 표를 던졌다. 험난한 구직난 속에서 취업에 성공했지만, 직장생활 5년차인 그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다. 회사에서 고단한 하루를 지내고 나면 남는 시간에는 잠을 자거나 텔레비전을 잠시 보는 것이 고작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구호에는 코웃음이 절로 나온다. 자신이 퇴직하는 날까지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승진을 하거나 주식이 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빨리, 그리고 많이 벌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로 공부를 하러 떠나는 것이 현재 그의 소망이다.


투표참여 약속하는 한 가족 (출처;경향DB)


가족은 한 사회의 축소판인데, 정말이지 이 작은 사회 안에서도 다양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복작인다. 사회 안에는 각기 다른 정당을 지지하거나,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거나, 무관심한 구성원들이 있다. 그럼에도 선거가 치러지고 새로운 권력, 새 대통령이 탄생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되든 그렇지 않은 후보가 되든 이제 새로 당선된 후보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도 지지하지 않거나 끝까지 갈팡질팡하던 사람들도 새로운 변화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투표를 마친 가족이 집으로 돌아가 한 밥상에서 밥을 먹고 지지고 볶으며 함께 살아가야 하듯이 말이다. 


서로 다른 입장 사이에서 투닥거리고 큰 소리도 좀 내는 게 정치라고들 하지만, 새 대통령은 다양한 구성원들의 마음을 좁혀주길 바랄 뿐이다. 아니, 적어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여유 정도는 생기기를 바란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해서 사회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살림살이가 금방 나아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욕구와 역사를 가진 사람들을 두루 살피고 공감하는 마음이 있다면, 5년은 변화가 일어나기에 짧지 않은 시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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