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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끝에 올림픽에 참가한 박태환 선수는 아쉽게도 자유형 200m, 400m 경기에서 모두 예선 통과의 벽을 넘지 못했다. 박 선수는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몸도 괜찮았고 기록도 나쁜 건 아니었지만 아쉬운 결과가 나왔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여론의 평가는 박했다. ‘예고된 참사’라며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박태환이 7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아쿠아틱 스타디움에서 열린 자유형 200m 경기 후 기록을 확인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M

돌아보면 박태환(1989년생)과 비슷한 연령대 엘리트 선수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박 선수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 우승을 시작으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비슷한 또래인 모태범(1989년생), 이상화(1990년생), 이승훈(1988년생), 김연아(1990년생) 등이 빙속, 빙상 종목에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로 태어난 이들은 동양인에게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종목들을 차례로 석권하며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언론은 이들을 한 데 모아 ‘G(Global)세대’로 호명하며, 자신감과 한국사회에 대한 신뢰를 새로운 세대의 특징으로 꼽았다. 강대국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고, 우리 현대사의 성취를 부정하지 않는 등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췄다는 의미였다. 한 신문사는 사교육·영어열풍·조기유학 등을 통해 단군 이래 최고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대가 탄생했다며 칭송하기까지 했다.

그런 G세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1988~1991년생으로 좁혀 잡으면 263만명, 1986~1991년생으로 넓혀 잡으면 389만명이 여기에 해당한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이 또래의 상당수는 취업이 되지 않아 고생하고 있거나 취업에 성공했더라도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감을 곱씹으며 분투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5~29세의 체감 실업률은 27.6%로 그 수는 78만명으로 나타났다(2015년 8월 기준). G세대의 3분의 1은 체감적으로 실업 상태라는 의미다. 글로벌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던 바로 그 G세대가 이제 ‘노답’ ‘헬조선’을 외치고 있다.

애초에 G세대 같은 것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보기술에 친숙하고 어학에 능통하며 자신감이 넘치는 세대’라는 것은 청년층 전체를 놓고 보면 허황된 이미지에 불과하다. 계급, 젠더, 지역 등의 차이를 무시하고 뭉뚱그려 하나의 집단인 것처럼 취급하면 실체는 사라지고 기성세대가 억지로 부풀린 바람만 남는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그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자 양궁 대표팀을 가리켜 ‘쾌활 세대’로 호명한 신문이 등장했다.

일본의 사회학자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그의 저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역사적으로 청년들에게 덧입혀지는 자의적인 이미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는 ‘편리한 협력자’이고, 다른 하나는 ‘이질적인 타자’다. 청년들이 ‘편리한 협력자’로 거론될 때는 대체로 나라의 형편이 어려울 때다. 전시에는 장병으로, 노동력 수출이 필요할 때는 산업역군으로, 불황에는 1인 기업가로 나라의 부름에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전에 없던 이름을 붙여가며 청년들에 대한 높은 기대치를 표현하고 칭찬을 남발한 다음, 어김없이 청년들의 삶이 더 힘들어진 건 역설적인 사실이다.

젊은이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협력자로 호출된 것처럼, 타자로 전락하는 일 역시 한순간 임의로 벌어진다. 더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찾으려 할 때 어김없이 배제의 논리가 성립하면서 청년이 ‘이질적인 타자’로 자리매김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청년들은 근거가 희박한 혐의를 쓰고 논란의 중심에 서서 여론의 포화를 맞곤 한다. 언론 역시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는 사안을 단순한 사태로 축소시키거나 악의적인 프레임을 짜 청년들을 구석으로 내몰기 일쑤다.

‘편리한 협력자’든 ‘이질적인 타자’든 청년을 특정 이미지에 가두는 건 현실에 맞지 않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알파벳 모든 글자를 동원해 세대 이름을 갖다붙여도 특정 연령대라는 이유만으로 청년을 그 중 어느 하나에 묶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다. 청년들의 삶에 다가서려면 이미지를 내버리고, 계층적 다양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여담이지만, 한국 여자배구의 간판 김연경(1988년생)도 이른바 G세대다. 며칠 전 열린 한·일전 도중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김 선수가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 우연히 화면에 잡혔다. 한순간 스쳐 지나갔지만 블로그와 소셜미디어에서는 그 장면만을 편집한 동영상이 돌기 시작했다. 같은 장면을 놓고 불쾌함을 느낀 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대체로 통쾌하다는 반응이었다. 앞뒤가 꽉 막힌 현실에서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이것이 G세대의 정직한 일면인지도 모른다.

김성찬 | 소아청소년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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