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청산은 사회 규범 확립의 요소다. 공동체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전제이기도 하다. ‘흑역사’의 진실 규명과 피해자 구제, 가해자 문책은 그래서 시대적 과제가 된다. 한국의 과거사 청산 작업은 두 갈래다. 일제강점기의 매국 및 협력 행위와, 한국전쟁 및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인권 유린 문제다. 모두 70년도 지나지 않은 가까운 과거사이고 살아있는 이해당사자도 많다. 충격과 진통이 작을 수 없다. 하지만 새살이 돋아나려면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과거 청산 작업에서 사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 전 과정에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 사법부의 올바른 역사인식이 엄중한 이유다. 그러나 최근 국가의 폭력과 인권 유린 행위에 대한 시대착오적 판결을 보면 걱정된다.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대통령이 이를..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그것을 발동한 행위는 불법이 아니라는 사법부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민사3부는 그제 긴급조치 9호 위반을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20일간 불법구금돼 조사를 받은 최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최씨에게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에 돌려보냈다. 긴급조치 9호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됐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국민 개개인에 대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판결이다. “위헌이지만 불법은 아니다”라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을뿐더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