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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1)
아직 살아있는 자, 전두환

초등학교 6학년 때 불심검문을 당한 적이 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경찰관이 붙잡아 세웠다. “어디 가니? 책가방 좀 열어봐.” 불쾌했으나 두려움이 불쾌함을 압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약한 장난이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옆 동네에 전두환이 살았기 때문이었다. ‘옆’까지의 거리는 꽤 됐지만, 대학생들의 시위(그땐 데모라고 했다) 소식이 들려오면 우리 동네까지 분위기가 달라졌다. 무전기를 든 경찰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대통령이 근처에 사니 치안걱정 안 해도 돼 좋다는 소리도, 얼굴 한 번 보지도 못한 대통령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불편해진다는 소리도 들렸다. 전두환이 사는 곳은 어디쯤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멀고 아득한 느낌이어서 어릴 적 그의 이미지는 마치..

일반 칼럼/기자 칼럼, 기자메모 2019. 2. 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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