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는 픽션, 즉 만들어진 사회이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비근대적 사회의식은 픽션에서 불안을 느끼지만, 근대정신은 픽션의 가치와 효용을 믿고 재생산한다”고 했다. 이렇게 근대를 구성하는 픽션의 정점에 헌법이 있다. 국가라는 거대한 픽션의 설계도이다. 군사정부의 성실한 마름이던 대법원이 공정하고 독립적인 사법부라는 서구적인 픽션을 갖춘 것은 역설적이게도 1987년이 계기다. 시민혁명의 대상은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정권과 법원이지만 6월항쟁은 법원에 손을 대지 않았고, 법원은 혁명에 무임승차했다. 어설픈 타협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실체를 드러낸다. 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판사가 이명박 정부 당시 대법관이 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관여한 검사가 박근혜 정부에서 대법관이 됐다. 세상..
대법원이 상고법원제 도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상고법원제란 대법원과 별도로 상고법원을 설치해 대법원으로 올라온 상고사건을 대법원과 상고법원이 나누어 재판하는 제도를 말한다. 3심제에서 대법원은 최종 재판을 담당하는데, 대법원은 법 해석의 통일을 기할 필요가 있는 사건이나 공익사건 등 중요 사건만 직접 재판하고, 그 외의 일반적인 상고사건은 별도의 상고법원이 담당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상고법원의 판사는 대법관이 아니라 일반 판사들이다. 이런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대법원이 드는 이유는 상고사건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2014년 상고사건 수는 3만8276건으로, 대법관 1인당 연 3000여건을 처리해야 하는 수치이다. 사건 수가 너무 많으니, 대법원의 재판이 지연되거나 부..
최근 법조계의 화두는 상고법원이다. 사법정책자문위원회는 지난해 6월 대법원장에게 상고법원 도입을 건의했고, 여야 의원 168명이 지난해 12월 상고법원 설치 법안을 발의했다. 대법원에 접수된 사건 수는 2004년 2만432건에서 2014년 3만7000건이 넘었고, 대법관 1인당 사건 수는 3000건 이상이다. 대법원이 밀려드는 사건의 홍수에 빠져 사건 처리에만 급급해지면, 대립되는 가치를 비교형량하여 분쟁 해결을 위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상고제도는 이미 여러 차례 변경됐다. 대법관과 일반 법관이 함께 재판하기도 했고, 대법원과 고등법원 상고부가 상고사건을 분담하기도 했으며, 상고허가제를 실시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