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람이 언제부터 불어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태풍이었을까. 학교 수업 중이었는데 순식간에 창밖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가르는 번개와 세상을 찢는 천둥소리. 어쩌면 오늘이 세상의 끝인지도 몰라. 놀란 몇몇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때 열 살 무렵의 아이들이었다. 할아버지 같았던 나이 많은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을 달래려고 애썼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한참을 울다보니 수업이 끝났다. 여전히 사방은 캄캄했다. 집에 갈 용기가 없어 아이들은 학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창문에 쪼르르 매달려 있었다. 아, 저걸 보아. 아이들 가운데 누군가 운동장 한끝을 가리켰다. 그곳에 서 있던 나무 한 그루, 우리 학교에서 가장 우람하고 커다랗던 나무가 뿌리까지 뽑혀 쓰러져 있었다. 그걸 본 순..
사람들은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런 인식 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종종 있다. 친족 성폭력의 경우가 그렇다. 특히 아버지가 딸을 강간한 사건에 대해 얘기하면 백이면 백 “어떻게 아버지가 그럴 수 있나, 완전 쓰레기다”라고 반응한다. 그런데 이런 인식에는 함정이 있다.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가해자는 자신의 일상 범주 안에 존재하는 ‘누구’일 수 없다. 나의 상식과 일상은 연결될 수밖에 없기에 가해자는 나의 일상 범주 밖 어떤 곳에 존재하는 ‘괴물’로 이미지화된다. 그래서 실제로 친족 성폭력 피해 가족들은 피해 자체를 믿지 못하고 부인하거나 피해 아동이 틀렸다고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친족 성폭력 가해자는 비정상적인 사고구조 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