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1일은 유엔에서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인 1960년 3월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샤프빌(Sharpville) 지역 경찰서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인종별로 거주지를 나눈 뒤 지정된 구역을 벗어나면 항상 ‘통행권’을 소지해야 한다는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 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우리는 통행증이 없으니 모두 체포하라며 경찰서로 모여들었고, 어느새 그 숫자가 수천 명을 넘어섰다.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시위 분위기도 점점 격앙되었고, 경찰은 저공비행 전투기까지 동원한 해산 작전 과정에서 도망치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공식 집계로 69명의 민간인 사망자와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샤프빌의 학살’로 불리는 이 사건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
영화 이 지난주 관객 10만명을 넘었다. 화려한 캐스팅과 세련된 마케팅이 스크린을 앞뒤에서 밀어주는 상업 영화가 아닌 이른바 ‘다양성 영화’로서는 의미 있는 숫자다. 영화는 가난한 부모가 출생등록을 하지 않아 서류상으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12세 빈민가 소년의 삶을 통해 빈곤과 난민 등 우리 사회에서 감추어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작년 프랑스 칸(Cannes)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후보에 오르고,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역대 가장 오랜 시간이라는 15분의 기립박수 기록을 세운 영화 에는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영화 속 등장인물과 비슷한 삶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소년은 실제 현실에서도 합법적인 신분이 없었던 시리아 난민 소년이었고, 다른 배우들도 실제 난민이거나..
세 살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는 차 속에서 처음 들었다. 전기를 만드는 화력발전소에서 참혹하게 숨진 스물넷 청년 비정규직의 이야기를. 애간장이 끊어지는 부모의 절규도 전해 들었다. 슬프고 미안한 마음보다 부끄러움과 분노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밤늦게 공장을 순찰하며 고속으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떨어진 석탄을 주워 담다 사고를 당했다. 혼자 있었다. 옆에 안전스위치를 눌러 기계를 멈출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지하철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꽃다운 청년을 떠나보낸 것이 불과 두 해 전이다. 그도 혼자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고, 비정규직이었다. 사고 이후 두 해가 지나는 동안 천만촛불이 광장을 뒤흔들고 정권도 교체되었지만 열악한 노동 현장은 변하지 않았다..
농촌지역 양돈장 정화조 청소작업을 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노동인권 보호와 산재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등 노동·사회 시민단체는 4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들은 한 해 평균 2.8명이 정화조 질식사고로 사망했는데 올해는 벌써 4명이나 숨졌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들이 100만명에 이르는데도 인권침해와 노동착취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자 부끄러운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이른바 3D 제조업체뿐 아니라 국내 농축산업에서도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구타와 욕설 등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을 뿐..
이른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노동조합을 설립하거나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근로자로서의 법적 지위가 인정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어제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조가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낸 노조설립신고서 반려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타인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며 거기에는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국적과 신분을 뛰어넘어 미등록 이주노동자에게 헌법상 노동기본권을 인정한 사법부의 첫 판단으로서 의미가 있다. 노동권은 국적이나 인종에 관계없이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하는 당연한 권리다. 미국·일본과 독일·프랑스·영국 등 유럽연합 국가의 사례라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