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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는 차 속에서 처음 들었다. 전기를 만드는 화력발전소에서 참혹하게 숨진 스물넷 청년 비정규직의 이야기를. 애간장이 끊어지는 부모의 절규도 전해 들었다. 슬프고 미안한 마음보다 부끄러움과 분노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밤늦게 공장을 순찰하며 고속으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떨어진 석탄을 주워 담다 사고를 당했다. 혼자 있었다. 옆에 안전스위치를 눌러 기계를 멈출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지하철 구의역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꽃다운 청년을 떠나보낸 것이 불과 두 해 전이다. 그도 혼자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고, 비정규직이었다. 사고 이후 두 해가 지나는 동안 천만촛불이 광장을 뒤흔들고 정권도 교체되었지만 열악한 노동 현장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위험한 작업은 하청업체에 헐값에 넘겨지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 위험을 혼자 견디며 목숨을 걸고 일을 한다.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18 세계이주노동자의 날 맞이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 실현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이주노동자의 노동현장도 마찬가지다.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사업장은 대부분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열악한 3D업종이 많다. 산업 구조적으로 위험이 많은 일터다. 그런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안전에는 더 취약하고, 위험은 더 증가된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안전교육은 형식에 그칠 때가 많다. ‘화기엄금’ ‘전도주의’와 같이 외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한자어로만 기재된 안전표시판은 그림 표시가 없는 한 외국인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사업주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외국인력을 고용하다보니 안전장비도 충분히 지급하지 않는다. 경기도의 한 가구사업장에서는 외국인에게는 일회용 마스크를 일주일씩 사용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사업장 내에서 가장 위험한 업무는 늘 이주노동자의 몫이 된다.

비자가 없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에는 그 사정이 더욱 열악하다. 작년에 여주의 한 돼지농장에서는 분뇨를 치우는 작업을 하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2명이 황화수소에 중독되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숨진 이주노동자들은 황화수소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없이 사용주의 지시에 따라 밀폐된 분뇨 창고로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시키지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제 기계가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사업주는 이주노동자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지시를 거부할 최소한의 권리도 없었다.

몇몇 사업장의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2017년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산재발생률이 국내 노동자보다 6배 높았다. 이주노동자 중 상당수가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고,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사업주의 요구에 따라 공상(개인사유에 따른 재해)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밝혀지지 않은 산재가 더 많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 비율은 더 높을 것이다. 통계적으로 일터에서 이주노동자에게 더 많은 위험이 강요되고 있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모든 사업엔 위험이 따른다. 화력 발전소에는 연료인 석탄이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고, 지하철이 운행되기 위해서는 스크린도어가 잘 정비되어야 한다. 식탁에 맛있는 돼지고기가 올라오려면 누군가는 돼지똥을 치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힘없는 사람에게 강요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그 사업으로 가장 이득을 많이 보는 사람이 가장 많이 부담하고 책임지는 것이 합리적이다. 위험업무에 대한 외주·하청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형식적인 원·하청 관계를 벗어나 사업장 내 안전관리자로서 원청 사용자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들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 사업장 내 안전기준의 마련과 교육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더 이상 이런 비극적인 죽음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부 노동안전정책의 근본적인 변화가 시급하다.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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