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남 남포 출신 박영심 할머니. 1938년 3월, 그녀는 일제의 ‘처녀 공출’에 걸려 일본군 성노예가 되었다. 중국 난징에서 3년을 보낸 뒤 미얀마의 라시오, 윈난성 쑹산(松山) 등의 위안소를 전전했다. 6년 동안 많은 날은 하루 30~40명씩 일본군을 상대했다. 1944년 9월, 일본군이 패주하면서 연합군 포로가 됐다. 그녀는 미군의 신문에 게재된 위안부 사진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사진 속의 여인은 만삭이었다. 2000년 그녀는 “사진 속 여인이 나”라고 밝혔다. 또 난징과 윈난의 옛 위안소에 가서 “내가 여기에 있었다”고 외쳤다. 2015년 난징 리지샹(利濟巷) 위안소 옛터에 기념관이 들어선 데는 그녀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기념관 마당에는 임신한 위안부의 동상이 세워졌다. 충남 논산 출신 송신도..
일반 칼럼
2018. 8. 1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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