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의 계절이 찾아올 때마다 소환되는 1994년에 나는 대학 졸업반이었다. 여름방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다. 출근시간은 오전 7시였는데, 퇴근시간도 없고, 휴일도 없었다. 내가 맡은 일은 굉장히 다양하고 많았지만 한 단어로 요약하면 심부름이었다. 나는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에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위를 뛰어다니거나 버스를 타고 돌아다녔다. 그늘도 없는 시내 한복판에 내리꽂히던 하얗고 뜨거운 햇빛이 기억난다. 그래도 더웠던 기억은 없다. 기업이라는 곳에서 일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본 일은 처음이었다.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렇게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서 모든 것이 연습 같았다. 나는 지나치게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나를 본 사람마다 정말 좋은 회사에 들어갈 거라고, 못 들어가면 우리라도 ..
1994년, 그해 여름은 지독히 더웠다. 기상청 예보관들과 출입기자들은 7월 초부터 폭염이 이어지자 날마다 덥다는 표현을 달리 전달하기 위해 온갖 사전을 뒤져야 했다. ‘찌는 듯한 더위’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등의 말을 다 썼는데도 더위는 그칠 줄 몰랐다. 이 고민은 그해 7월24일, 서울의 최고기온이 38.4도를 찍으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이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여러 곳에서 역대 최고기온 값을 경신했다. 전날 38.2도를 하루 만에 갈아치운 것이자, 1907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87년 만의 기록이었다. 무더위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폭염 일수 31.1일, 열대야 일수 17.7일이라는 역대 최장 기록을 세운 뒤에야 폭염은 멈췄다. 시민들이 낮에는 은행 등 대형건물에 들어가 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