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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1994년 폭염

opinionX 2018. 7. 23. 14:15

1994년, 그해 여름은 지독히 더웠다. 기상청 예보관들과 출입기자들은 7월 초부터 폭염이 이어지자 날마다 덥다는 표현을 달리 전달하기 위해 온갖 사전을 뒤져야 했다. ‘찌는 듯한 더위’ ‘불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등의 말을 다 썼는데도 더위는 그칠 줄 몰랐다. 이 고민은 그해 7월24일, 서울의 최고기온이 38.4도를 찍으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이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여러 곳에서 역대 최고기온 값을 경신했다. 전날 38.2도를 하루 만에 갈아치운 것이자, 1907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87년 만의 기록이었다.

무더위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폭염 일수 31.1일, 열대야 일수 17.7일이라는 역대 최장 기록을 세운 뒤에야 폭염은 멈췄다. 시민들이 낮에는 은행 등 대형건물에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밤에는 집 밖으로 피서를 나오는 풍경이 벌어졌다. 거기에 7월8일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까지 겹쳤으니 ‘체감 폭염’이 떨어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22일 강원도 철원 순담계곡에서 피서객들이 래프팅을 하며 더위를 잊고 있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8도까지 치솟아 기록적인 폭염이 닥쳤던 1994년 이후 가장 높은 7월 기온으로 기록됐다. 기상청은 “무더위가 장기간 지속될 전망이므로 온열 질환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상훈 기자

하지만 1994년 폭염에는 천적이 있었다. 폭염이 절정에 달할 것 같으면 신기하게도 태풍이 북상해 더위를 식혀주었다. 이해 태풍은 여느 때와 달랐다. 태풍은 대개 열대 해상에서 수증기와 열기를 잔뜩 공급받은 뒤 북상하면서 점차 세력을 잃게 마련인데 이해 태풍들은 북상하면서도 세력을 유지했다. 한반도 주변 수온이 높아진 탓에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8월 초에 온 태풍 브랜든은 바람 피해 없이 비만 뿌리고 소멸했다. ‘착한 태풍’ ‘효자 태풍’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환영받았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장마를 서둘러 몰아내고 오는 듯싶더니 단숨에 1994년 폭염을 위협할 정도로 기세가 등등하다. 22일에는 38.0도까지 서울의 수은주를 밀어올렸다. 기상청은 지난 20일 ‘폭염 전망’을 통해 “당분간 기온 상승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보했다. 없는 사람들에겐 추운 것보다 더운 게 낫다는 말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1994년보다 도시 열섬현상이 훨씬 강화된 터라 폭염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종전의 방침을 바꿔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인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폭염에 대한 대비, 특히 독거노인 등 취약 계층에 대한 각별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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