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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민주항쟁 (1)
역사에 스민 노래

노래의 힘은 막강하다. 누구라도 한번쯤 무심코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잊었던 옛 추억이 한순간에 떠오르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삶의 한 장면에 각인된 노래는 세월이 지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그 순간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노래는 일종의 기억장치인 셈이다. 이는 개개인의 경험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의 집단의식에서도 작동한다.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경험했던 이들에게 그때의 기억은 함께 불렀던 노래들을 통해 순식간에 재생된다. 지난 주말 6·10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식에서 ‘그날이 오면’ ‘벗이여 해방이 온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광야에서’ 같은 당시 곡들이 기악 연주로 혹은 노래로 울려 퍼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이 곡들이야말로 그 시대를 기념하는 가장 강력한 ..

일반 칼럼/문화와 삶 2017. 6. 1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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