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대권 레이스에 불이 붙은 느낌이다. 총선 직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여당은 총선패배로 차기 운운할 형편이 아니었다. 총선에서 선전한 야권에서는 개인 욕심을 앞세운다는 비판을 초래해 모처럼 얻은 좋은 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문제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분위기를 바꾼 전환점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이었다. 올해 12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한국을 방문한 그는 예상과는 달리 대권에 대한 야망을 꽤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갑자기 여권에 유력후보가 등장한 셈이다. 그 이후 야권에서 잠재적 차기 후보들이 대권을 향한 행보에 나서기 시작했다. 두 흐름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시기적으로 이들의 움직임이 겹치면서 여론의 관심을 대권경쟁으로 이동시..
지난주 대통령과 3당 원내대표·정책위원장 회담이 진행됐다. 정기적으로 회동하기로 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정부가 소통의 필요성을 들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의 문제점을 인정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회동 전후에 일제히 “협치”를 주요 화두로 삼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협치”에 대해 정치주체마다 부여하는 의미가 불분명한데도 이를 정국운영의 합의된 원칙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가 제자리를 찾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혼란을 증가시킬 것이다. 협치라는 용어는 외래어인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로 종종 사용돼 왔다. 거버넌스는 모든 종류의 관리(governing)가 이루어지는 구조와 절차를 의미하고, 정부에 적용될 경우에는 통치를 의..
총선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정국운영 기조가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에서도 제기되었다. 소통의 필요성이 많이 언급되었다. 그렇지만 소통을 위한 첫 번째 시도였던 지난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의 대통령 발언은 국민의 기대에서 또 빗나갔다. 총선 결과를 놓고 대통령은 양당체제와 국회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말했다. 비판의 소리가 컸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통령의 말처럼 총선 결과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심판이라는 거의 논란이 없는 사실까지 무시하는 대통령의 태도를 보면 앞으로도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하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내외의 위기를 고려할 때, 이는 심각한 상황이다. 총선 ..
지난주 총선 결과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필자는 4월5일자 정치시평에서 야권 분열이 여당의 압승을 보장하지 않으며 야권이 분열된 채 치러진 선거에서도 여소야대 결과가 출현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여소야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떠올렸던 것은 여당 성향의 무소속 당선자들을 포함하면 여권이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당이 제2당으로 몰락하고 어떻게 해도 과반수를 확보할 수 없는 결과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번 총선이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단호한 심판이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반면 총선 결과가 야권에 주는 의미는 복잡하다. 호남에서는 국민의당이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선전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 대해 국민의당은 기존 정치권에 대..
이번 총선은 결국 ‘1여다야’ 구도로 진행될 모양이다. 영남과 수도권에서 일부 여권 성향 무소속 후보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여권 전체의 분열은 아니다. 반면 야권에서는 나름의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세 정당이 각축하고 있다. ‘1여다야’가 수도권에서 15~20개 지역의 결과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에 따른 여야간 의석수 차이만 30~40석에 달한다. 영남에서 무소속과 야당 후보가 지난 총선보다 많이 당선권에 진입하고 여당의 비례의석수가 감소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15석 정도는 줄일 수 있다. 그래도 산술적으로 여당 의석수는 지난 총선 때보다 20석 정도 증가한다. 야권은 뻔한 결과를 예상하면서도 왜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는가? 보수세력은 꾸준히 선거연대를 정치적 야합으로 비판해왔다. 소선거구제를 채..
더불어민주당 현역의원들의 공천탈락이 이어지고 있다. 물갈이라는 면에서는 더민주가 다른 정당들에 앞서고 있다. 그 결과 더민주가 선거에서 선전할 가능성이 뚜렷이 높아졌는가? 그렇게만 보이지 않는다. 물갈이가 선거승리를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갈이를 통해 드러나는 정치적 지향과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관건이다. 물갈이를 통해 만들어진 정치공간을 새로운 야당에 부합하는 인물들로 채워야 한다. 그리고 이를 분열된 야당들의 연대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우선 인물교체라는 면에서 방향이 불분명하다. 물갈이가 지지층의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물갈이의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더민주가 자신의 정책노선을 명확하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더 ..
공천을 둘러싼 논란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공천과정이 시끄러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시간은 많이 지체됐다. 3월 초면 선거 대진표가 나와야 하는데 공천 규칙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0여일 안에 모든 공천이 마무리돼야 하는 상황이다. 유권자들은 후보검증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투표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공천과정에서의 혼란은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인데 이번에는 정도가 더 심하다. 물론 선거과정에서 혼란과 소란은 정치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는 공천으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기도 하다. 권위정부 시기 여당의 공천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됐고, 야당의 경우는 분란이 없지 않았지만 ‘제왕적 총재’의 권위와 영향력에..
신년 벽두에 감행된 북의 핵실험이 지난주 개성공단 폐쇄로 이어지며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이 사태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증가하면서 정치권에서는 “북풍” 논란이 일고 있다. 야당은 정부·여당이 북의 위협을 빌미로 정권심판 요구를 누르려 한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정부·여당은 야당이 당리당략에 눈이 어두워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을 외면한다고 반박한다. 남북관계를 둘러싼 논란이 당분간 계속될 터인데 야당의 입장에서 보아도 북풍론은 사태의 본질을 짚는 비판이 아니다. 정부·여당이 남북대치 국면을 선거에 활용할 의도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통일부 장관이 나서서 개성공단에 들어간 남측 자금이 핵개발에 사용된 증거가 있다고 발언하면서 정부가 현 국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