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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은 일본과 다르게 1997년 김대중 정권을 시작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그 이후로도 분단상황을 이용한 안보 협박 정치에도 불구하고,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을 배출했다. 일본은 여전히 자민당 1당 체제이고, 극우 세력만 투표를 해서 변화의 기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최근 몇 년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누가 더 무능하고 파렴치하고 부패했는가’ 경쟁을 보면서, 차라리 능력 있는 의원들의 1당 체제인 ‘민주주의 독재’가 낫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진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이철희, 표창원 두 초선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이철희 의원은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했다. 인상적이었다. “제가 속해 있는 여당 얘기를 먼저 한다면, 저희는 야당 해봤잖아요. 저희가 제1야당 때 상대 발목 많이 잡았거든요. 선거로 선출된 (보수) 대통령이 뭔가 하고 싶어 하면 봉쇄한 적이 많았거든요. 저희도 그랬는데 여당이 되어 보니까 지금 야당도 저희 때랑 같아서 너무 답답하거든요. 서운하고 답답하더라도 우리도 그랬으니… 할 말이 없는 거죠. 그때 우리는 맞았고, 지금 당신들은 틀렸다는 태도로는 문제를 전혀 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야당도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여당 해봤잖아요. 여당 할 때 얼마나 답답한지 알잖아요? 이게 계속되다보니 싸우는 게 전부잖아요. 우리 정치의 수준을 너무 떨어뜨리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 이러한 상황은 진영 논리도 아니고 의미 없는 ‘보복 핑퐁’ 정치다. 대북관계나 경제정책은 당장 이익이 보이니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있다’고 치자. 젠더나 차별금지법에는 여야 할 것 없이 민생에 무지한 정치인들이 표와 관련 있다고 착각, 국민을 상대로 이유 없는 반항을 반복하고 있다. 상식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번 정권이 걱정이다. 특히 외교정책, 해외 나들이에서 무슨 맥락 없는 말로 나라 망신을 시킬까. 이미 외국의 유수 언론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교양’을 보도한 바 있다. 이후 정권교체가 된다면, “너네도 그랬잖아”를 반복할까.

누가 더 나쁜가 경쟁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여론의 ‘검사 편중’ 인사 지적에, “법치”라고 답하면서 “과거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들은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더불어 법률가 출신이 정·관계에 다수 진출한 미국의 사례를 들어 “그게 법치국가”라며, 앞으로도 “필요하면 검찰 출신 인사 추가 기용하겠다”고 말했다(경향신문 6월9일자 1면). 우선 ‘민변 도배’는 사실이 아니다. 정권 초기, 정부와 대통령실(청와대) 주요 직책 가운데 윤석열 정부의 ‘검찰 출신’ 인사는 13명이고, 문재인 정부의 ‘민변 출신’ 인사는 1명이다.

검찰이든 변호사든 율사의 활동 영역이 지나치게 넓은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율사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예전에 사법시험 합격은 조선 시대의 과거 급제처럼 인식되었다. 군부 독재와 ‘3김 시대’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외에 노무현, 문재인, 윤석열 대통령 모두 사시 출신이다. 대선에 두 번 도전한 이회창씨도 판사 출신이고, 윤 대통령보다 먼저 합격한 ‘노동자 출신 변호사’ 이재명씨도 마찬가지다. 박원순, 오세훈 서울시장도 사시 출신이다.

민변은 공식적으로는 1988년에 창립되었지만, 1970년대부터 활동한 인권 변호사들이 모태다. 민변에 비판적인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헌법을생각하는변호사모임’ ‘시변(시국을걱정하는변호사모임)’도 있었다. 지인인 변호사에게 농담으로 “너는 무슨 모임이냐”고 물었더니 자신은 “모두 아니다”라며 ‘생변(생계를걱정하는변호사)’이라고 말해 웃은 적이 있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이제 정삼각형의 균형이 아니다. 지금 변호사들의 위상은 예전과 다르고 수입도 천차만별이다. 일부 판검사는 변호사를 ‘영업직’으로 부르기도 한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윤 대통령의 ‘검사 vs 민변’이라는 인식이다. 정의로운 검사도 많지만, 두 집단이 이제까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기울인 노력과 역할 비교는 난센스다. 하지만 민변의 ‘민주사회를 위한 노력’도 예전 같지는 않다. 문재인 정부 당시 민변 출신 국회의원, 장관의 부패와 부도덕은 많이 드러났다. 슬픈 일이지만, 나에게 문재인 정권 5년은 민변 출신 장관에게 큰 피해를 입은 지인들의 고통과 소송을 지켜보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과 민변(과 시민사회)로 대표되는 특정 집단의 등용이 반복될 소지와 이를 둘러싼 논의 방식이다. “우리만 그랬냐, 너네도 그랬잖아” “너희랑 우리랑 같냐” “너희가 더 심했잖아” 식의 정치는 답이 없다. 이는 인사 문제뿐 아니라 다른 사안도 마찬가지다. 필리버스터가 대표적이다. 국회가 대의 기능을 잃은 지 오래지만 당장 국회의사당을 폭파시킬 수 없는 한, 그들이 인간의 바닥을 자주 보여주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면, 언론이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해 보도를 하지 말든가.

“내가 검사 편향? 너네는 민변 도배.” 이 발언은 윤리학, 평화, 피해와 가해, 고통과 용서의 문제 등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거의 그렇다. 늘 심오하다. 내가 아는 국방전문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이 우리를 한 대 때리면, 우리는 두 대 때리는 게 자주국방이죠.” 내가 말했다. “한 대만 때리지, 왜 두 대를 때립니까?” 그가 말했다. “선생님 같으면, 먼저 당했는데 분이 풀리겠습니까?” 평화란 무엇일까. 정의란 무엇일까. 나를 포함, 한 대 맞으면 한 대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평화 만들기의 어려움

대개 우리는 “내가 입은 피해를 고스란히 돌려주겠다”라고 말하지만, “고스란히”의 양은 계량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다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피해를 이해하는 방식이 변하기도 하고, 여전히 피해 당시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그로 인해 잃어버린 인생과 시간의 억울함…. 정당한 피해의식이다. 철없는 이들은 “잊으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말하지만, 인생은 고난과 불공평의 연속이다. 지나가면, 또 온다.

성서 레위기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복수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는 관습법 시대의 정의(법)였다. 마태복음의 “오른 뺨 대주기”가 고상해 보이지만, 레위기의 율법이 더 공정하다. 이 원칙은 ‘지나친 정의감’, 즉 복수의 한계를 정한 것이다. 당한 것 이상으로 보복하려는 사태를 막기 위함이다. 받은 만큼‘만’ 돌려주어야지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이다.

법무부의 영어 명칭은 ‘Ministry of Justice’. 정의와 복수는 같은 말이다. 전자가 제도권의 법이라면, 후자는 현행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의의 실현이다. 정의가 법으로 실현되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유전무죄는 기본, 법정은 계급, 젠더, 나이, 피고인의 외모까지 작동하는 부정의한 전쟁터다. 법정은 불평등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이다.

다시 인사 문제로 돌아오자. ‘검사 도배와 민변 도배.’ 이것은 “눈에는 눈”과 같은 차원의 정의인가. 누가 피해자인가를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처음 때린 사람인가. 이명박씨에게 필요 이상의 충성심을 보이려던 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후 일부 국민들은 트라우마와 팬덤으로 정치를 망쳤고, ‘가해자(검찰)’는 문재인 정권의 피해자를 자처하며 대중을 불러 모았다. 정치 경력이 전무한 이가 대통령이 되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도 대안이 아니다. 결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의가 먼저다. 결국 다학제를 아우르는 영원한 질문일 수밖에 없다. 정의는 불가능하다. 경합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결국 평화 만들기는 피해자의 몫이다.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알기 어렵고 인간에게는 고약한 자아(에고)가 있어서 강자일수록 자기 방어에 능하다. 피해자의 성장과 그 과정에서 만들어내는 언어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참고로, 윤 대통령이 좋아하는 미국의 검찰이 국민(people)을 대변하는 방식을 보자. 미국 검찰은 스미스라는 사람을 기소할 때, “People vs Smith”라고 표기한다. 주마다 다르지만 미국의 검사는 선출직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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