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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소설가 정찬의 열 번째 장편소설 <발 없는 새>의 배경 중 하나는 첸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다. 제목 <발 없는 새>는 <패왕별희>의 주인공 장뤄룽(張國榮)의 <아비정전>의 대사에서 나왔다. “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이 새는 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해. 날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 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는 때지.”

세상에는 ‘발 없는 새’도 있지만 ‘발 디딜 곳 없는 새’도 있다. 운명은 같다. 둘 다 날갯짓을 멈추는 순간 죽는다. 내가 일곱 살 때쯤 <마징가 Z>와 <캔디>가 유행하던 시절, 우연히 TV에서 만화영화를 보았다. 홀로 바다 위를 나는 새. 그 장면만 반복된다. 아무리 날아도 새가 앉을 곳은 나오지 않고 결국 새는 바다에 빠져 죽는다. 얼마나 지쳤을까. 이후 그 새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나이 든 후의 해석이지만 그 새처럼 생명체의 일생이 오로지 삶과 죽음이 대립하는 노동의 시간이라면? 오래 살아야 할 이유는 물론이고, 왜 살아야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때부터 삶을 두려워하게 된 것 같다. 삶은 고달픈 데다 불공평하다.

그렇다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이 삶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답이 없지는 않다. 완전한 해방은 죽음뿐이다. 생명체의 죽음은 자연에도 보탬이 되고 당사자에게도 편안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포스트 트루스, 페이크뉴스 시대에도 이런 진리가 있다니 ! 그나마 안심이 된다. 아프거나 나이가 들면 이 진실을 의식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대개는 날갯짓에 지쳐서 잊고 살지만 예술은 이 유일한 진실을 일깨움으로써 일상의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위로한다. 나는 예전에 정찬의 소설 <길, 저쪽>(2015)을 읽고 이렇게 썼다. “… 당대 우리의 삶은 형(刑)의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과 같다. 앞에서 일어난 혹독한 일들을 알고 있으면서 다음이 자신의 순서가 되는 현실을 견뎌야 한다. 우리는 긴 행렬에 서서 그의 작품을 들고 투쟁을 시도한다.”

소설가 김연수가 쓴 예술의 의미는 적확하다. “… <발 없는 새>에는 한중일 3개국의 역사가 개인의 운명 속으로 잔인하게 스며든다. 난징에서, 홍콩에서, 교토에서, 대전에서. 장국영은, 아이리스 장은, 열 네 살 식민지 소녀는, 최승희는 저마다 무엇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잔인한 악의 구조와 함께 기꺼이 무너지고자 하는 자발적 허무,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나는 그 아름다운 무너짐을 본다.” 그렇다. 이 소설은 198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가까지 등장하는 지난한 동아시아 역사의 집이다.

죽을 운명의 변화

정찬과 김연수는 그들 스스로 예술가이므로 “잔인한 악의 구조와 함께 기꺼이 무너지고자 하는 자발적 허무”를 선택하고 그것에 대해 쓴다. 특히 정찬은 악을 해부하는 사상가이다. 악은 의미가 없으므로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직면해야 할 문제다. 나는 악은 말하기와 듣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겪은 사람도, 듣는 사람도 믿지 않는다.

홀로코스트로 600만명이, 소비에트 혁명과 문화대혁명에서 각각 2000만명이 죽었다. <발 없는 새>는 1937년 난징대학살과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진행된 문화대혁명을 다룬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근대적 인간이 만들어낸 한계 없는 악의 모습이다. 발 디딜 곳 없는 새의 운명은 가련하지만, 그것은 자연의 일이다. 그러나 이제 죽음의 과정도 간단치 않다. 근대에 이르러, 생명체로서 물질일 뿐이었던 인간은 스스로를 영적(靈的)인 존재로 규정했다. 자연의 일부가 아닌 자아, 주체, 정신의 주인이라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인간은 자신을 포함해 모든 죽음을 관리, 생산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문화대혁명의 원인을 “대약진 정책의 실패로 류사오치(劉少奇)에게 주석 자리를 넘기고 베이징의 정치 전선에서 물러난 마오의 권력에 대한 허기”라고 본다. 마오쩌둥은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한 사춘기 소년들의 에너지에 주목했다. 마오에 열광한 소년들과 천황에 헌신한 일본인들….

난징대학살은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한국인 위안부 희생자 문제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당시 일본군의 행동을 이해하는 일은 특정 집단에 대한 절망을 넘어 인간성 전반에 대한 절망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난징대학살. 단 기간에 세계 어느 전쟁에서도 유례없는 살육과 고문, 강간이 발생했다. 하지만 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는 추모 공간이 아니다. 전사를 추앙하는 영광과 감격의 장소다. 천황의 말씀을 받들고 천황의 일부가 된 이들은 희생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업권을 스스로 반납한 학생들

무의미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노력은 대개 문명이라고 불리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다. 문명화는 자연이든 타인이든 대상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대상이 된 우리는 저항하기도 하지만, 압도적인 악의 의지는 대학살의 신으로 군림한다. 지구상 하나의 종(種)에 불과한 인간이 추구하는 의미가 인간과 자연을 모두 파괴한다면 - 기후위기, 빈곤, 기아, 난민… -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악의 구조에 얽힌 삶의 지독함. 삶을 포기하는 데도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의 일부 학생들은 자신이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0점을 받는다. 30점이면 몰라도 0점을 받으려면 공부해야 한다. 일본에 비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평화’를 선택하는 것 같다. 통계청 통계로 한국의 20대 사망 원인 중 54%가 자살이다. OECD 국가 중 한 해를 제외하고 언제나 1위다. 통계도 실제보다 훨씬 누락된 수치다.

한국 젊은이들의 이른 죽음은 빠른 깨달음의 결과이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우리 사회의 추(醜)함과 악이 너무 적나라하기 때문이다. 자살은 선택이 아니라 삶의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고통의 문제다. 한국 청년들의 이른 죽음은 고착된 불평등의 일방적 피해이다. 사회는 그들에게 미래의 불행을 확신시키면서 “너는 날 수 없다”고 설득한다.

<발 없는 새>는 정찬의 여느 작품처럼 심오하고 흥미롭고 ‘정보’가 많다. 특히 내게 인상적인 부분은 마오쩌둥이나 천황 같은 절대 권력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열정적 대중이다. 피억압자들의 지배자를 숭배하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역사의 반복은 사회 변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 마오와 천황은 부자, 셀럽, 관리된 몸 등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그들처럼 되기 위해 노력한다. 약자를 혐오하고 강자의 타락에는 관대하다. 재벌가나 대통령 부인이 입은 옷이 화제가 되고 ‘완판’이 된다. 이전 정권보다 업그레이드된 장관 후보들의 부패는 “나도 가능하다면 행사하고 싶은 능력”이다.

권력에 대한 선망은 현실을 부정한다. 우리는 누가 더 권력에 가까운가를 놓고 경쟁한다. 이때 인간은 누구랑 싸워야 하는지 판단력을 상실한다. ‘적’이 누군지 알 수 없으므로 일상이 전투일 수밖에 없다. 사용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없거나 사용자와 동일시하거나 사용자는 자기 일을 회피하는 시대다.

최근 연세대 재학생 세 명은 수업권 침해 등을 이유로 청소·경비 노동자를 고소했다. 이 사건은 2018년 일명 인국공 사태만큼이나 중요하다. 노동시장과 관련된 모든 개념이 유동적인 시대다. 이는 일부 학생과 노동자의 갈등도 아니고 미래의 노동자와 현재 노동자 간의 갈등도 아니다. 핵심은 학교 측과 청소 노동자들이 협상해야 할 일에 학생들이 나섰다는 사실이다. 원청, 하청 노동자 간 갈등도 이와 비슷하다.

이 사건은 언뜻 보기에 ‘요즘 학생들’의 이기주의로 보이지만, 보다 심각한 사실은 ‘내가 누구랑 싸우고 협상하고 제휴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는 점이다. 그저 즉자적으로 눈앞의 약자에게 자발적으로 사용자를 대신해, 공부할 시간을 낭비하는 학생들이 안타깝다. 청소 노동자를 고소한 학생들은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반대다. 인식의 게으름 때문에 스스로 공부할 시간을 엉뚱한 곳에 사용한 셈이다. 이 사건이 다른 학교에서 일어났다면 또 다른 쟁점이 있겠지만, 상황 파악과 방법이 틀렸다는 면에서 이들의 무지가 우려스럽다. 오래 날고자 하는 강자가 필요한지도 의문이거니와, 분별력 없는 리더는 재앙이다. 

 

정희진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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