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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나치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열리며 반인륜 범죄에 동원된 군인과 공무원 등 보통 사람이, ‘상관이 시킨다고 고문과 학살을 자행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예일대 심리학과 밀그램 교수는 답을 찾기위해 ‘기억력 향상에 관한 실험 참가자에게 1시간에 4달러를 드립니다’란 공고를 냈다. 참가자에게 ‘교사’ 역을 맡기고 ‘학생’ 역을 맡은 조교가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충격이 점점 심해지도록 했다. 실험실에는 엄숙한 표정의 ‘통제관’이 앉아 있었고 ‘교사’는 ‘통제관’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실험은 ‘교사’가 스스로 중단하거나 최고한도인 450V를 눌렀을 때 중단하도록 설계됐다.


전기충격 때문에 ‘학생’이 고통을 못이겨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 죄책감을 느낀 ‘교사’가 의문이나 항의를 제기할 때마다 ‘통제관’은 “계속하십시오” “실험규칙에 따라 계속 진행해야 합니다” “당신이 계속 진행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반드시 실험을 계속 진행해야 합니다”라고 ‘권위적인’ 응답과 지시를 했다. 이런 4단계의 ‘권위적 지시’에도 불구하고 ‘교사’가 실험 중단 의사를 밝힐 경우 실험은 종료됐다. ‘교사’가 ‘통제관’에게 안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 통제관은 “비록 고통스럽긴 하지만 근섬유에 항구적인 손상을 유발하진 않습니다”라는 모호한 답변을 주었다.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전기충격의 강도가 높아지고 ‘학생’의 고통스러운 반응이 심해질수록 ‘교사’들의 주저와 항의가 제기됐지만, 이를 ‘통제관’의 권위적인 지시가 무력화시켰다. 실험 대상자 40명 중 26명, 65%가 마지막 450V 버튼을 눌렀다. 14명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해 ‘통제관’의 권위에 항거하며 4달러의 참가 대가를 포기하고 실험을 중단했다.


밀그램의 두 번째 실험에서는 ‘교사’ 옆에 다른 ‘참가자’를 동참시켰다. 그러자 실험을 중단하는 참가자의 수가 40명 중 36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혼자라면 감히 권위에 도전하지 못할 사람들이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을 알면 권위에 항거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밀그램의 실험은 나치나 일제의 만행에 참가한 ‘보통 사람’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여전히 ‘선택은 본인의 몫’이라는 상식도 확인해 주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출입경기록 조사결과’ 문건.(출처: 연합뉴스)


이후 많은 나라에서 ‘권위에 대한 복종’이 만연하지 않게 법과 제도, 교육을 완비해오는 한편, 전범이나 조직범죄자에게 ‘권위에 복종했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검찰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오고 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권위적 지배를 법으로 규정해 오다 2004년 이를 폐지한 이후에도, 여전히 같은 문화와 관행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인혁당사건, 부림사건, 서울대 의대 간첩사건 등 재심을 통해 무죄가 입증된 과거 ‘공안 조작 사건’은 물론, 지금도 ‘서울시 탈북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조작된 중국 출입경기록을 법정에 제시해 사법체계를 뒤흔들고 있다.


정권이나 국정원 등 밀그램의 실험에서 ‘통제자’ 역할을 맡은 권위적 존재들의 지시에 따라 마구 전기충격 버튼을 눌러대는 ‘교사’의 모습이다. 동병상련일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선 ‘상명하복 조직에서 지시에 따랐다’는 이유로 범죄행위를 한 국정원 직원과 경찰관들을 불기소 처분했다. 그 ‘선처’를 받은 자들이 법정에서 검찰에 맞서 싸우고 있다. 김용판 재판에선 검찰이 이들의 진술 앞에 처참한 패배를 떠안았다. ‘밀그램의 덫’에 빠진 검찰을 이대로 둬도 될까. 권위에 저항하던 윤석열, 박형철이 찍혀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는 검찰, ‘권력의 도구’ 외의 의미는 없어진 듯하다. 기소만 하는 영국 검찰, 법원에 소속돼 자체 조직이 없는 독일 검찰, 직선으로 검사장을 뽑는 미국 검찰의 사례를 눈여겨볼 때다.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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