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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저지르거나 위기상황에 봉착한 사람이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무의식적인 자기보호 행동을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합리적인 사고나 감정을 스스로 차단하고 왜곡·거부해 ‘안전감’을 찾으려 하거나 희생양을 찾아 화풀이를 하는 등의 행동이다. 때로 지나친 불안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습관화된 방어기제의 발동은 문제를 직시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노력을 봉쇄해 버린다. 특히 어린이의 본능적인 거짓말이 방치되고 조장될 경우 성인이 되어 문제나 갈등상황에 봉착할 때마다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고 그로 인한 다른 사람의 피해는 무시하거나 합리화하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지난 대선 기간에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이 불거지자 대선 패배라는 감당하지 못할 결과에 두려움을 느낀 새누리 정권은 ‘경찰의 허위 중간수사결과 발표’라는 상황 왜곡과 ‘종북척결을 위한 정당한 대북 심리전’이라는 합리화, ‘대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인지 왜곡, ‘NLL 대화록 파동이나 이석기 내란음모, 채동욱 혼외자’ 등 희생양에게 비난의 화살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지방선거’라는 새로운 대상으로 관심을 집중시켜 ‘대선 부정’이라는 골치아픈 문제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대선 1년, 박 대통령 사과 요구하는 시민사회종교계 (출처: 경향DB)
합리적으로 판단해 현실을 직시하고 잘못을 인정한 뒤 용서와 선처를 구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며 사태를 수습하고 교훈을 얻어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을 모두 거부한 것이다. 거짓말을 또 다른 거짓말로 막으려는 어린이들의 시도가 대부분 실패로 끝나 더 큰 꾸지람으로 이어지고, 성추행 범죄를 감추려던 고려대 의대생들의 피해자 공격이나 만삭 아내 살인을 덮으려던 의사의 집요한 거짓말이 긴 재판 끝에 비극으로 끝난 것처럼 자기보호를 위한 본능적 ‘방어기제’에 습관적으로 의존한 정권의 끝은 결코 좋을 수 없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역대 독재 정권에서 반복된 현상이다.
지금 세상을 장악한 권력의 힘으로 경찰과 검찰, 심지어 법원의 일부 기능과 언론을 장악해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사실과 감정을 억압하고 거부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5년을 지나갈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방어기제로 억압된 인간의 욕구와 감정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축적되어 성격과 정서에 영향을 끼치듯, 권력의 힘으로 억압한 사실들과 국민의 감정과 욕구는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고 분출되게 마련이다. 결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사라지거나 잊혀지는 것이 아니다.
개봉 3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 역사에 새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변호인>이 하나의 증거다. 독일에서는 이미 70년이 넘은 나치 인권유린 범죄 피의자들을 수배하는 전단이 거리에 나붙고 임종 직전의 전범이 체포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친일정권에 의해 폐지되고 군사 독재정권이 이어지며 식민사관 추종자들에 의해 역사마저 왜곡되어 왔지만, 3·1운동과 4·19혁명, 5·18 민주화 항쟁과 6월 시민항쟁을 잇는 시민들의 촛불과 학자들의 양심과 법조인들의 소신과 공직자들의 독립 의지와 언론인의 사명감은 진실과 감정들을 기억하며 후손들에게 이어주고 있다.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 그리고 경찰의 정치와 선거개입 범죄, 김무성·정문헌·남재준 등의 국가기밀 유출 정치 이용 범죄, 청와대와 국정원이 주도한 11살 채군의 개인정보 불법유출 및 이용 범죄는 행여 이 정권에서 전모가 다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모두 드러나게 되어 있다. 더 늦기 전에 ‘방어기제’의 강한 유혹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대응책을 찾는 ‘성숙한 정권’이 되기 바란다.
표창원 |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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