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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남기씨 사건 당시 작성된 ‘상황속보’를 놓고 경찰이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실망 그 자체다.

지난 6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경찰청 대상 국정감사장.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이 상황속보 존재 여부를 묻자 이철성 경찰청장은 “관련 규정에 따라 보고 이후 폐기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즉각 일부를 공개했다. 이 청장은 “일부 부서에서 갖고 있던 걸 (민사)소송 과정에서 발견해 제출했다”고 해명하며 사본을 제출했다. 그 사본에는 백씨가 물대포를 맞는 시간대 상황속보는 쏙 빠져 있었다.

지난 15일 오후 검은티행동 참가자들이 ‘물대포가 죽였다’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울 종로 일대를 행진하고 있다. 검은티행동 제공

지난 17일 김정훈 서울경찰청장 정례 기자간담회. 김 청장은 “보고 나면 지금까지 바로 파기해왔다”며 “남아 있는 것은 민사소송 등에 대비해서 모아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18일 민중의소리가 경찰이 당시 작성한 상황속보 30보를 공개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상황속보 25보에는 ‘백씨가 오후 7시10분경 서린로터리에서 물포에 맞아 부상’이라고 나와 있었다. 당황한 경찰은 이번에는 “형사소송용으로 법원에 제출된 것”이라고 둘러댔다.

파기했다고 해놓고 문건이 드러날 때마다 말을 바꾸는 경찰에 어떤 신뢰를 보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물대포를 맞아 부상했다는 상황속보 내용을 숨기기 위해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힘들다.

경찰이 설명하는 상황속보 작성 및 파기 규정도 이해하기 어렵다. 상황속보는 현장 경찰관이 작성한 최초 상황 및 초동조치를 관련 부서와 지휘라인으로 시간대별로 전파하는 문건이다.

경찰은 공공기록물이 아니라고 하지만 스스로 대외비로 지정할 만큼 정보가치가 있는 문건이다. 그래서 상황속보 문건에는 ‘열람 후 파기’라고 명기돼 있다.

그런데 김정훈 서울경찰청장은 “파기 안 하면 문제가 되는지는 분석을 해봐야겠다. 파기하지 않은 경우 처벌하는 조항은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의 주장은 상황속보는 파기하든지 말든지 당사자가 알아서 하면 된다는 말로 들린다. 이를 수긍할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사회부 ㅣ 고영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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