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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명 vs 2500만명.

‘검찰개혁’을 앞세웠던 현 정부가 개혁 대상으로 삼은 검찰은 1만여명이었고, 차기 정부가 개혁 대상으로 삼은 여성은 2500만명이다.

모든 정부의 출범은 언제나 ‘개혁 대상’과 ‘개혁 의지’에서 비롯된다. 5년 전 정부는 개혁 정당성을 적폐로부터 찾았다. 국정농단과 검찰 인사에 개입한 김기춘, 우병우, 동조한 일부 검찰을 적폐로 일컫고,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를 천명했다. 그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임기가 다 흘렀고 정권은 교체됐다. 문제로 정의되었던 이에게 문제를 정의할 힘이 양도됐다.

새 정부는 새 개혁 대상을 정했다. 여성이다. 개혁 의지는 여성정책을 향했다. 특히 부처 중 가장 작고 초라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앞세웠다. 최초 발표한 한 줄 정책도 “여성가족부 폐지”, 대선 전날도 “여성가족부 폐지”를 반복해 공언했다. 여성을 개혁하겠다며 새 정권의 정당성을 호소했다.

그래서일까. 정부 출범을 알리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기사에도, 영국 일간 가디언 기사에도 새 대통령 소개 기사 제목마다 ‘안티 페미니스트’라는 전례없는 수식어가 따라왔다. 무리가 아니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성인지 예산 규탄’ ‘무고죄 처벌 강화 표명’ ‘대통령직 인수위 내 여성분과 미설치’ ‘새 정부 조각 때 여성 할당제 폐지’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는 선언’ 등 선거기간 내내 여성이 적폐라는 전제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이대남’을 자칭하는 지지자들은 제대로 여성정책을 철폐할 것인지 지켜보겠다며 성과 평가 기준을 제시했다. 최근 당선인은 오해가 있다고 밝혔지만, 이쪽저쪽 모두 지금까지는 새 정부가 여성을 개혁의 대상으로 여긴다 보는 것이 정설이다.

정부 출범과 함께 발떼기를 앞둔 여성개혁 기조 앞에 실패한 검찰개혁이 보인다. 검찰개혁 주체로 출범한 정권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에 5년 중 4년의 막대한 국정 능력과 시간을 소모했다. ‘적폐청산’의 의지로 시작한 정부는 허락된 대부분의 권력과 국정의지를 ‘개혁’에 투입했음에도, 회의감만 남긴 채 실패했다.

여성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은 새 정부도 같은 출발점 앞에 서 있다. ‘이대남의 적폐청산 의지’로 시작하는 정부인 만큼, 여성가족부 폐지 및 기능 조정, 역차별 정책 시정에 무모한 권력을 쏟아야 할 운명이다. 전부를 잃을지 모르는 무모한 전선을 앞두고 있다. 국회 내 여소야대의 형국에서 법 개정의 난항을 뚫고, 국회 밖의 모든 ‘적폐’ 여성·소수자 시민과의 갈등 및 투쟁을 마주해야 한다.

OECD 최하위 수준의 유리천장지수, 남녀 소득격차, 관리직 여성 비율, 기업 내 여성 이사 비율, 가사노동시간 격차 등 구조적 차별의 당사자인 여성 시민들은 궐기하여 거리에서, 정치의 장에서 대치하고 있다. 적폐 취급에 대한 반작용으로 권력을 쟁취한 정권은 그들의 새 적폐 세력인 여성 시민과의 투전 직전이다. 가장 이기기 힘든 절박한 이들과 정당성 없는 싸움을 앞둔 셈이다. 정권의 일방적 의지만으로 주도하는 개혁은 모두 허망한 실패로 끝나는 운명임을 몸소 겪어 잘 아는 당선인이기에, 자신의 역사적 과거에 비추어 미래를 보시길 바란다. ‘여성개혁’은 실패할 것이다.

 

변재원 작가·소수자정책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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