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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부산의 한 학교에서 중간고사 만점자에게 일주일간 점심 급식을 먹도록 한 일이 알려져 공분을 샀다. 놀라웠던 건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 대구의 한 초등 3학년 교실에서도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워 급식을 먹게 했다. 비교육적인 행태는 곳곳에서 벌어졌다.

전 세계가 <오징어 게임>이 가리키는 불평등 문제에 공감하며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의 메타포가 어디 성인들의 삶만을 보여줄까. 우리나라 학생들의 삶은 더 고단하고 치열하다. <오징어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성적 비관 자살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죽음만이 문제인가. 수능 3등급 안에 들지 못해 들러리 취급을 받고, 대학 입시 결과로 인해 패배감과 좌절 속에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청년들의 삶이다.

이것은 그들의 자유 의지가 아니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의지로 룰을 만든 것이 아니듯 말이다. 참가자들이 불만을 터뜨릴 때마다 진행요원들은 게임의 ‘공정’과 ‘평등’을 강조한다. 하지만 1명만 살아남도록 설계한 게임은 공정과는 거리가 멀다.

대한민국의 교육에서 공정이 중요하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상대평가 체제에서 타인과 나를 비교하기에 가장 쉬운 구조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나의 노력은 노력 자체로 존중받기 어렵다. 특히 점수화되지 않는 노력 또는 평가의 대상이 아닌 노력은 쓸모가 없어진다. 대한민국에서 학교는 배움터가 아닌 전쟁터다. 4개국 대학생에게 자국의 고등학교 이미지에 대해 물었을 때, 미국 40.4%, 일본 13.8%, 중국 41.8%가 ‘사활을 건 전장’이라고 답했는데, 한국은 무려 80.8%에 달했다.

20대 대선이 눈앞이다. 역사적인 대기록을 세웠다는 <오징어 게임>이지만 폭력성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그런데 우리 교육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왜 눈감고 있을까? 우리는 공정의 단면에 갇혀 전쟁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학교 안 ‘오징어 게임’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 냉혹한 입시경쟁 게임의 중단을 선언하는 대선 후보들의 교육공약과 용기 있는 결단이 절실하다.

정지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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