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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고 했던가. 지난해 3월4일 정치에 뛰어들겠다며 검찰총장직을 사퇴한 윤석열 대통령의 마지막 퇴근길. 윤 대통령이 대검 청사 로비 엘리베이터에서 뒷짐을 지고 직원들 앞으로 걸어나오는 장면에서 든 예감이다. 뒷짐지기는 쇼트트랙 선수들도 하지만 흔히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려는 사람들이 보이는 자세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의 걸음걸이에서 폐쇄적인 최고 사정기관에서 27년을 보내며 몸에 배었을지 모를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가 연상됐고,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 발현될지 서늘한 느낌이 왔다.

국민통합의 책무를 지는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 달라지지 않을까. 자기확신 속에서 오래 살아온 중년의 인격이 바뀌는 것은 물고기가 나무에 오르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긴 세월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넣어 형성된 정체성과 세계관은 웬만한 자극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예감은 현실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몇몇 장관 후보자들의 자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도덕성 면에서 전 정부에서 밀어붙인 인사들과 비교될 수가 없다”, “전 정권에서 지명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라며 전 정부보다 우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우리는 옳고 너희는 잘못됐다’는 인식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현 정부 전반이 공유하는 듯하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청장 내정자를 발표하면서 지난 정부에서 승진한 치안정감들은 정치권력과 연관돼 있어 배제했다고 했다. 이 정부 장관 후보자들이 그렇게 흠잡을 데 없는 인사들인지, 이 정부에서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인사들은 어떻게 다른지 설명은 없다. 코로나19 방역에서도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데, 전 정부는 정치방역을 했다고 비판하면서 현 정부는 과학방역이라고 주장한다. 통일부와 국방부, 국가정보원, 해경 등은 탈북 어민 북송 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에서 증거나 사실관계가 달라진 것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전 정부 때의 입장과 해석을 180도 바꿨다.

현 정부의 전 정부 공격은 대통령 선거에 이어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 등에서 잇따라 크게 이기면서 본격화됐다. 국민들의 지지가 자신들에게 쏠리고 있다는 자신감에 여전히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전 정부 세력을 무력화하고 다음 총선도 압도적 승리로 이끌겠다는 전략일 것이다. 자신감은 오만이나 독선으로 진화하기 쉽고, 결국 역풍을 맞는다. 최근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추락이 그 결과일 수 있다.

‘우리가 우월하다’는 오만이 추락으로 이어지는 건 지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선에 이어 2018년 지방선거를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에서는 ‘20년 집권론’이 흘러나왔지만, 결국 4년을 못 갔다. 전 정부 인사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은 민주화운동 세력이어서 도덕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우월하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 정부도 자신들이 비판했던 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세계는 복잡하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누구도 편견과 실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나는 저들보다 우월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실수보다 남의 실수를 잡아내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만 옳다는 생각은 대부분 착각이다. 어느 한쪽이 천사이고 다른 쪽은 악마라는 것도 신화 속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상대를 악마로 만든다고 내가 천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천사나 악마가 아닌 것처럼 문재인 정부도 악마나 천사가 아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한다. 남을 비판하거나 공격하기에 앞서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사람은 훨씬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다. 주인공의 천재적인 활약상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그를 둘러싼 비장애인들의 존중과 배려의 감정선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끈다. 우리 사회가 정치적 진영은 물론 계층, 세대, 남녀 간에도 극단적으로 분열돼 온갖 갈등에 휩싸인 지 오래다. 이 와중에 물가, 금리는 뛰고 주가는 떨어지고, 안 그래도 마음 둘 곳 없는 서민들의 삶은 더욱 퍽퍽해지고 있다. 이 엄혹한 시절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잔혹한 복수극보다는 따뜻한 힐링 판타지다. 나도 틀릴 수 있고, 상대가 옳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존중과 배려가 나올 수 있다.


김준기 뉴스콘텐츠 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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