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정치가 화제다. 쟁쟁한 정치인들 틈에서 거침없이 발언한다. 진영과 이해관계에 매몰된 정치권 사투리도 거의 없다. 실수(공관위와 전략위 결정 혼선)하거나 과격(‘멱살’ 발언)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국민 눈높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검수완박 정국에서 드러났듯 정치 신인임에도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되 타협 가능한 지점을 만들 줄 아는 정치력도 갖췄다. 온갖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3년 넘게 싸웠던 ‘추적단 불꽃’ 활동 을 통해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이 생겼으리라 짐작된다. 통찰은 상식의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 이 지점이 박지현 정치의 힘이다.
박지현 정치가 주목받을수록 민주당의 민낯이 일거에 드러나고 있다. 대선 패배 50여일이 지난 28일 현재까지 제대로 된 평가조차 없다. 오히려 꼼수 탈당 무리수까지 두며 검수완박 대치 정국을 만들었다. 민생과의 우선순위를 지적하려는 뜻이 아니다. 검찰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현안은 거의 방치하는것이 문제다. 국회 앞에선 활동가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18일째 단식 농성 중이다.
진영 정치도 팬덤 정치와 결합하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전체 유권자의 20%에 이르는 당원 규모, 탈중심화를 지향하는 팬덤 그룹 증가 등 과거와 달라진 팬덤 정치가 여의도 정치와 결속력을 높이는 추세다. 반면 이들을 압박할 당내 혁신세력은 없다.
지방선거는 대선 연장전을 작정한 듯하다. 지역구 의원들의 사천 횡포에 더해 대선 때 계파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은 공천에서 배제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박지현 정치는 민주당의 견고한 구조에 균열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민주당 정치는 이런 시도마저 용납하지 않을 기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사과 요청이 대표적이다. 새 정부 첫 내각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둔 시점에 조 전 장관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은 ‘조국 사태’가 검증 기준임을 분명히 하는 시그널이다. 그럼에도 당 안팎에선 “정의로워야 할 청년의 가치를 버렸다”고 맹비난한다. 강성 지지층은 지도부인 그를 철부지 취급하는 비아냥도 서슴지 않는다. 청년 세대론으로 묶어두려는 시도다. <그런 세대는 없다>의 저자 신진욱 교수는 “청년성을 강조할수록 강성 지지층 문제, 거대 정당의 적대적 상호의존 등 정치의 구조적 문제가 가려진다. 이 구조는 유지된 채 청년 이 정치권에 진입만 하면 정치가 바뀔 것인가. 아니다. 이준석 정치가 반면교사 아닌가”라고 세대론 프레임을 비판했다.
박지현 정치가 새 깃발이 되려면 그도, 민주당도 무거운 숙제를 떠안아야 한다. 당은 청년들이 대안 세력으로 나설 수 있는 길을 터야 한다. 지지 기반과 비전 확립은 필수적이다. 청년 세대 내부 경쟁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박지현이라는 아이콘은 청년 여성의 실존적 위협에 맞서는 구심임을 증명했다. 그가 비대위원장인 민주당은 이들의 삶의 문제를 다루는 폭발력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대선 이후 당내 영토는 검수완박 등 ‘아저씨 의제’가 차지하고 있다. 박지현 정치의 소유권을 확보하려면 그 스스로도 민주당 정치의 시선을 바꾸는 데 앞장서야 한다. 신규 가입한 여성 당원들과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들이 개딸에 만족하며 ‘명빠’로 묶이는 순간 박지현 정치도 ‘이재명 스피커’라는 오명 속에 소모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온더록 박지현은 ‘암초 위에 좌초된 배’가 될 것인가, ‘깨지지 않는 다이아몬드’가 될 것인가.
구혜영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