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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매력 자본’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영국의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이 쓴 책 <허니 머니(Honey Money)>의 한국어판 제목이기도 하다. 하킴은 돈, 교육, 인맥으로 대표되는 경제 자본, 문화 자본, 사회 자본뿐 아니라 개인의 매력도 중요한 자본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매력 자본을 다시 여섯 종류로 나눠 아름다운 외모와 건강한 신체,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대인관계 능력과 재치, 패션감각, 이성을 대하는 기술을 꼽았다.
“얼마면 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권력이다.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부를 과시하며 남들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점을 피력한다. 요즘은 장래희망으로 건물주를 꼽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니 경제력이 매력이라는 명제에 마음으로 반대할지는 몰라도 인정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과 교육을 통해 얻은 전문성과 사회적 지위, 고상한 취향, 유창한 외국어는 문화 자본이다. 학연·지연 등 갖은 인맥으로 확보한 지인과 동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는 사회 자본이다.
경제, 문화, 사회 자본이 전통적 자본이었다면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개인이 갖고 있는 고유의 매력 역시 기존 자본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행한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외모가 매력적인 사람이 같은 조건에서 평균 15%가량 높은 소득을 올렸다. 옷차림이 승진이나 연봉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이는 응답자의 40%를 넘는다.
한국 역시 외모가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다. ‘외모 지상주의’ ‘예쁘면 고시 3관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성형외과와 헬스장이 붐비는 이유가 있다. 나 역시 깔끔한 외모에 밝고 상냥한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사회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다. 외모를 지적하거나 비하하는 말이 대중매체에서 공공연히 등장하는 것은 적어도 내가 경험한 다른 문화권에서는 볼 수 없었다. 누군가를 칭찬할 때 제일 앞에 등장하는 서술어가 ‘친절하다’ ‘재치 있다’ ‘열정이 있다’였던 반면 한국은 여러 매력 자본 중 유독 외모가 강조되는 사회다.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변화를 느꼈다. 요즘 유행하는 클럽하우스 때문이다. 테슬라의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와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해 가입했다. 클럽하우스는 실시간 화상 회의 프로그램 줌에서 비디오를 빼고 목소리만으로 작동하는 식인데, 여기에 강력한 소셜 네트워킹 기능을 추가한 애플리케이션이라고 보면 된다. 팔로한 사람이 방을 열면 알림이 뜨고, 동시간대에 열린 다양한 주제의 방 중에 관심 있는 제목의 방에 들어가 남의 말을 듣거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프로필 사진 말고는 상대의 외모를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클럽하우스에서 돋보이는 매력은 주로 화술이다. 조리 있는 말솜씨, 배려 있는 말투, 예의 바른 태도와 재치가 클럽하우스의 매력 자본이다. 개인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모더레이터라 불리는 진행자에 따라 방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진행력도 큰 매력이 된다. 참여를 유도하거나 중간에 잘라내고, 대화의 기회를 고루고루 주며 이야기를 끌어가야 한다.
유명인사라 해도 클럽하우스에서는 인기가 그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외모를 보지 않은 채 목소리만으로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상대가 지닌 매력 자본 중 지적인 요소와 말투, 예의가 더욱 부각된다. 외모로 약점을 중화할 틈도 없이 금세 내공이 드러난다. 전문가라 해도 잘난 체하는 말투로 혼자만 계속 말하려고 하거나 중간에 끼어들어 훈수를 두는 꼰대 기질이 드러나면 이름 보고 들어왔던 이들이 곧바로 우수수 방을 나간다.
클럽하우스 프로필에는 정해진 항목이 없다. 대부분 직책이 아닌 하는 일이나 과거에 했던 일, 관심사를 주로 적는다. 나이나 구체적 학력을 쓴 사람은 아직 못 봤다. 프로필 사진 아래 성을 뺀 이름만 표시되기 때문에 서로를 부를 때도 ‘○○님’으로 통일한다. ‘예의 바른 반말’ 방도 있는데 이때는 ‘님’을 뺀 이름으로만 부른다.
관심 있는 주제의 방을 찾아 대화를 듣기만 해도 되고, 손들기 버튼으로 대화 참가의사를 표시하면 모더레이터가 연사그룹으로 초대해 발언 기회를 준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룹의 구분은 진행을 위한 기능적 분류이지 계층이 아니다. 스타트업을 시작한 이가 클럽하우스 창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유명 칼럼니스트가 북한 식당 주인에게 레시피를 묻는다. 배경, 성별, 나이, 지위를 막론하고 개인으로 존중받고 참여를 보장받는 문화가 플랫폼 하나로 구현되다니. 웰컴 투 더 클럽하우스!
하수정 북유럽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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