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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합을 겨루어도 승부가 나지 않는, 날카로운 인파이터 추미애 법무장관과 건들건들 아웃파이터 윤석열 검찰총장 간 싸움을 지켜보는 일은 참 힘들었다. 싸움이 길어지면 왜 싸우게 되었는가는 사라져버리기 마련이라고 하는데 추미애와 윤석열의 싸움이 그랬다. 무림 고수들의 현란한 싸움 기술과 그들이 속한 문파가 어디인가라는 것만 남았다. 그들이 창과 방패로 찾아낸 법과 제도는 매번 의표를 찌르는 것이었으나 그것들은 벌거벗은 싸움의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싸움판에서 검찰개혁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박범계 장관이 법무부를 맡고 윤석열 검찰총장과 몇 차례 수작을 주고받더니 서초동 주변이 조금 소강 상태인 것 같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평화인 것은 분명하나 다행이다. 잠정평화라 하더라도 이제는 검찰 문제를 차근차근 이성적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 때문이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지면 날기 시작한다’고 했던가? 이제 검찰개혁을 둘러싼 소동을 정리할 시간이다.

검찰 문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지키는 자를 누가 지키나?”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때 비교정치학에서 풍미했던 제3세계 군부정치에 대한 질문이다. 군대는 폭력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기구이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책무인데 제3세계 여러 나라에서 군대는 이런 본래의 직업적 임무를 넘어 정치에 개입했다. 그래서 ‘지키는 자를 누가 지키나?’라는 말이 생겼다. 이 말은 지금 우리가 검찰에 던지는 질문이다. 검찰도 군대처럼 국가폭력을 담당하는 기구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이 국가기구를 만들었고, 그 유지·운영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기구를 어떤 규모로 유지할 것인지, 이 기구가 어떤 일을 맡게 될 것인지를 국민들이 결정한다. 이것이 문민우위의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문민우위의 원칙이 깨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민들이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놓은 국가기구가 거꾸로 주인인 국민을 지배하려고 나서는 사례가 많았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과거에는 군대, 지금은 검찰 내부의 ‘신직업주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민우위의 원칙에서 부여해준 직업적 임무를 벗어난 소명의식이 조직 내부에 생겨났고 이것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얘기다.

검찰은 형사적 범죄를 수사하고 소추하는 국가기구다. 검찰의 임무는 한정되어 있다. 가령 사회적으로 나쁜 행동이 있다고 하자. 이 문제에 접근하는 목표와 방법은 가족, 학교, 교회, 검찰, 정치 등이 다 다르다. 그런데 검찰이 다른 영역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즉 신직업주의를 가지는 순간부터 검찰 자신이 문제를 일으키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지금 검찰은 자신이 가장 정당한 문제 해결자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검찰의 이러한 신직업주의가 행동으로 나타난 단적인 사례가 법무장관 후보자의 청문회가 진행 중인 ‘정치의 시간’에 무작스러운 압수수색을 한 것이었다. 이 사건이 그 이후 이어진 긴 소동의 방아쇠였다. 이 일을 계기로 검찰에 대한 의구심이 구체적으로 커졌다.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고백이 검찰의 신직업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라고 하겠다.

검찰의 신직업주의는 오랫동안 검찰이 정치권력 유지에 동원되어온 결과다. 검찰은 정치적 비판세력을 죽이기 위해 동원되기도 했다. 자본의 요구에 따라 물리적 힘으로 산업평화를 강압하기 위해 동원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검찰은 자신이 정치·사회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정의롭고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정치 문제조차 사법적으로 해결해 달라고 검찰로 달려간 부끄러운 행동, 즉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지금 분명한 것은 검찰 조직이 전체적으로 형사사법기구로서 자신의 역할을 넘어선 신직업주의 경향을 가지게 되어 문민우위의 원칙이 훼손되었다는 사실이다. 검찰 조직 전체가 변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자면 공수처 설치,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등 권력기관들 사이의 견제를 넘어 시민사회가 검찰권을 규율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여는 방법까지 찾아야 한다. 국가기구들 사이의 견제를 통해 힘의 분산과 균형을 취하는 한편 시민사회의 힘이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래야 문민우위의 원칙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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