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난 26일 아시안게임 카누 용선 여자 500m 결선에서 여자 남북 단일팀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주 끝에 금메달을 획득했다. 카누 용선은 노잡이 10명, 키잡이 1명, 북재비 1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일정한 거리를 질주하는 게임이다. 용선이 카누 종목에 들어간 것은 아시아의 오랜 전통을 이은 것이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초나라 충신 굴원이 반대파의 모함으로 좌천을 거듭하다가 멱라수에 투신했다. 그를 구하려고, 혹은 그의 시신을 건지려고 여러 배들이 앞다퉈 달린 데에서 경도(競渡, 배를 저어 빨리 건너기를 겨루는 놀이) 시합이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용 모양으로 장식한 용선(龍船)을 사용한 건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오늘날에도 중국, 대만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용선대회를 즐기는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굴원을 추모하는 원뜻보다는 흥겹고 격정적인 놀이로서 용선 경도가 유행하던 송나라 때, 항주 지역을 다스리던 범중엄은 허구한 날 경도 시합을 벌이고, 물가에서 연회만 즐기며, 잦은 공사로 백성의 힘을 낭비한다는 이유로 탄핵당했다. 흉년으로 온 나라가 구황에 힘을 쏟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범중엄이 경도로 연회를 연 의도는 여유 있는 이들의 소비를 활성화하려는 데에 있었다. 아울러 공공건물을 대거 신축하고, 큰 절의 주지들을 불러서 흉년의 싼 인건비로 토목 공사를 크게 벌이도록 부추겼다. 수만 명이 일자리를 얻었고 상인들도 모여들었다. 범중엄은 이 모두가 궁극적인 구황 정책이었음을 해명하였고, 그해에 항주 백성들만 안정을 유지했다.
굴원은 “온 세상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있네”라며 비분강개하였다. 범중엄은 “천하사람 아무도 근심하기 전에 근심하고, 세상사람 모두가 즐거워한 뒤에 즐거워하겠다”고 다짐하였다. 방식은 다르지만 내 한 몸보다 더불어 사는 이들을 먼저 위하는 마음이 각별한 이들이다. 카누는 ‘협력’을 넘어 ‘합력’을 겨루는 경기다. 남과 북이 하나의 북소리에 하나의 몸짓으로 온 힘을 합하여 쑥쑥 전진하는 모습에서 비할 데 없는 감동이 느껴졌다. 우리 앞의 난관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단 20여일 만에 최고의 호흡을 이루어낸 단일팀의 모습에서만큼은 희망을 말해도 좋지 않을까. 북소리 끝에 울려 퍼진 아리랑처럼.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일반 칼럼 > 송혁기의 책상물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답답한 교육 앞에서 우리는 (0) | 2018.10.04 |
---|---|
다시 물을 바라보며 (0) | 2018.09.12 |
운명이 필요한 이유 (0) | 2018.08.16 |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것 (0) | 2018.08.01 |
더위를 이기는 법 (0) | 2018.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