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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즈음. 천안의 한 시골마을 길가에 낡고 찌그러진 흰색 카니발 차가 검게 그을린 채 발견되었다. 이 마을의 한 할머니가 차 안을 들여다보고 놀라 경찰에 신고했다.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른셋의 젊은 노동자가 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운 채 잠든 것이었다. 그는 삼성전자서비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결혼 전 자신보다 네 살 어린 아내와 자주 데이트를 하던 그 마을, 수백년 된 나무 아래가 그가 생을 마감한 마지막 자리였다. 그의 이름은 최종범. 우리는 이제 그를 ‘열사’라고 부른다. 짧았던 청년의 삶의 끝자락 100여일의 흔적,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 때문이다.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죽어라 일만 했다. 하루에도 14시간씩 점심식사조차 거르며 주말도 없이 일만 했다. 에어컨 등 중수리 전담이었기에 온갖 건물 벽에, 난간에 매달려 목숨을 건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일상이었다. 여름 성수기에 월 400시간씩 피를 짜내며 돈을 벌어도 비수기 9개월은 카드 대출로 연명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러나 그의 이런 처지는 최종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한 달 ‘빡세게’ 일해 먹고살면서 법에 보장된 제 권리조차 요구할 수 없는 현실에서 ‘노예’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노예가 달리 노예인가. 인정할 건 냉정히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저임금·장시간·고강도 노동시장의 그물 안에 갇혀 있으니 우리는 모두 노예다.


故 최종범 노동자 영정들고 행진 (출처 :경향DB)


그런 그가 전국의 1500여 동료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의도치 않았지만 그것은 삼성이라는 거대자본에 만들어진 최초의 대규모 민주노조였다. 대다수 언론이 주목하지 않을 때 그들은 역사를 만들었다. 최종범은 이날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동조합 창립 출범식 자료집 인증샷과 함께 짧은 글을 올렸다. “우리에게 생긴 힘.”


그는 그 힘을 믿었지만, 법 위에 군림해온 삼성 자본이 무소불위로 휘두르는 권력에 이 힘이 묻히지 않길 바랐다. 유서에 동료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며 전태일 열사를 언급한 것, 그리고 부디 자신의 죽음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난 주말 삼성그룹 본사 앞에는 700여명의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들이 모여 동료를 죽음으로 내모는 삼성 자본에 당당하게 맞서 승리하겠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모두가 최종범”이라고 선언했다.


전태일 열사의 분노는 ‘차가운 분노’였다. ‘나’가 아닌 ‘모두’가 되는 선택, 그리고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한 분노가 그가 품었던 분노였다. 우리는 보통 뜨거운 분노 안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곤 한다. 그런 분노는 쉽게 휘발되기 쉬워 분노의 당사자를 쉽게 제풀에 지치게 만든다.


최종범 열사가 품은 분노 역시 차가운 분노였다. 그는 동료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에 괴로웠고, 자신의 죽음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투쟁하는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메시지로 남겼다. 쉽게 휘발되지 않고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불씨 같은 것. 우리는 최종범 열사의 죽음을 부채감이나 무기력감으로 받아들여선 안된다. 그의 꿈에 대해 잊지 않고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에게 그 꿈의 메시지를 전하고 함께하자고 외쳐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이들의 몫 아니겠는가.


그것은 비단 삼성 제품 불매 운동이나 ‘사회적 책임 경영’ 등의 구호를 호출하는 것만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14조원을 마케팅 비용으로 쏟아부으며 도배하는 삼성전자의 ‘광고’들이 얼마나 쉽게 자신의 진면목, 잔혹함과 ‘기업 살인’들을 가려 버리는가. 삼성전자는 사회적 논란이 지속될 때에는 계속 침묵하다가 다시 온갖 거짓말과 미사여구로 진실을 덮어버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때문에 자신을 버리며 삼성의 현실을 알리고자 했던 서른셋 젊은 노동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그가 품었던 차가운 분노의 형식을 간파해야 한다. 그것은 삼성에서 일하며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스스로 단결해 싸울 때에만 삼성이 진정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민주노조’에 대한 꿈이다.


오늘은 43년 전 전태일 열사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날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 불씨는 아직도 살아 있다. 43년 전에 남긴 단 한 사람의 불씨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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