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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신문반·민속반 등 특활반을 이끄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 탈춤·민요·노래·연극을 가르치는 교사, 생활한복을 입고 풍물패를 조직하는 교사, 직원회의에서 원리 원칙을 따지며 발언하는 교사, 아이들에게 인기 많은 교사, 자기 자리 청소 잘하는 교사…. 1986년 ‘교육민주화선언’ 이후 문교부가 일선 교육청에 내려보낸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라고 한다. 법외노조라는 길을 걷게 된 전교조의 현재 상황을 떠올리며 읽고 있자니, 두 가지 풍경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첫 풍경은 검찰 포토라인에 선 3선 현직 교육감의 모습이다. 교육청 직원들로부터 금품을 받고 각종 인사에 부정 개입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정을 드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교육감은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부인했고,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압수수색을 당하고 법정에 서는 와중에도 산하기관 직원 등에게 강연한 후 강사료를 받았다는 불미스러운 얘기도 들린다. 검찰은 학교 공사비 부풀리기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한 상태다. 인사·뇌물비리 수사로 거의 6개월이 지나갔는데 수사가 끝나기는커녕 또 다른 수사를 받고 있으니 말 그대로 ‘검찰 수사로 시작해 수사로 끝나는’ 해인 셈이다. 지역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교육감의 사퇴와 구속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전교조 교사들 플래카드 시위 (경향DB)

그런데 이 모든 상황에도 교육부는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 시·도 교육청 평가’에서 이 도시의 교육청을 2위로 선정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평가 자체가 교육부 추진 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는 교육청에 높은 점수를 주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 평가 결과에 따라 1000억원 안팎의 특별교부금이 차등 배분된다고 한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제기된 비리 의혹이 아직 소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교부금이 과연 적재적소에 쓰일까 걱정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풍경은 교단에 서서 울먹이는 선생님과 훌쩍이는 아이들로 가득한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교실이다. 울음을 참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는 담임 선생님과 그런 선생님을 잡아끌며 “이제 그만 됐다”며 나가자는 교감 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학교를 떠났다. 고작 아홉 살,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는 졸지에 담임 선생님이 사라진 초유의 상황에 어안이 벙벙했다. ‘선생님은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했지만 함부로 물어봐서는 안됐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날들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소곤거리며 선생님댁과 친구네에 번갈아 모였다가 전화기를 붙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리 반은 학생 모두가 참여해 학급문집을 만들고, 다함께 노래를 부르는 신나고 즐거운 반이었다. 선생님은 늘 “누가 제일 잘했다”는 칭찬 대신 “모두 잘했다”는 칭찬을 잊지 않았다. 가장 공부 잘하는 아이를 지명해 반장으로 뽑는 대신 아이들을 불러 정견 발표를 한 후 투표로 반장을 선출했고, 공부를 잘하거나 집이 잘사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아이들을 존중해 주셨다. 칭찬을 독차지하던 우등생들이 입을 삐죽거릴 정도로. 선생님은 전교조 조합원이었고, 단지 그 이유로 강제해직됐다. 1989년, 역사가 전교조 창립을 기록하던 그 해에 우리는 젊은 울보 선생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그 울보 선생님은 바로 노미화 선생님이다. 감히 말하지만 노미화 선생님을 만난 건 내 학창 시절의 행운이었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노미화 선생님처럼 열정 가득한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곳곳에서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린 듯한 풍경이 보인다. 하지만 절망할 때는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20여년 전의 나처럼 선생님을 강제로 뺏기고 우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앞서 그린 두 가지 풍경 중 어떤 풍경도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의 노력과 응원이 필요한 때다. ‘교사도 학교가 두려운’ 이 시대에, 교사들의 손마저 놓아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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